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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서

張珠瑞

1883. 6. 3 ~ 193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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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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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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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칠곡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3년 6월 3일 경상북도(慶尙北道)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에 두 차례에 걸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인동면 진평동 만세운동은 대구부(大邱府) 신정(新町)에 사는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을 찾아와 등사판(謄寫版)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며 조선 각지에서 대한 독립 시위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 지방에서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작되었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던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협의하여 3월 12일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3월 12일 저녁 8시, 인동면 진평동 뒷산 기슭에서 약 20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의 주도자인 이영식과 이상백이 민족 자결과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연설을 한 후,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후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들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고 주도 인물들은 붙잡혔다. 하지만 만세시위의 기운은 여전히 남아 3월 13일 오후 4시, 오후 9시 3월 14일 오전 10시에 약 15~40명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다시금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金道吉)과 마을 사람 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은 다시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4일 밤 9시,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 뒷산에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혔고, 이후 경찰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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