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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현

張浚鉉

1893. 7. 28 ~ 195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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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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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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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관련 사건

  • · 칠곡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6) 1893년 7월 28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인동면 진평동의 만세운동은 이상백(李相栢)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함께 3월 12일 오후부터 독립선언서를 마을 곳곳에 붙이고,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다. 3월 12일 저녁 8시 인동면 진평동의 뒷산 기슭에 2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일제 경찰은 만세를 부르는 주민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붙잡았다. 그러나 인동면의 만세시위는 전혀 사그러들지 않아서, 3월 13일 오후 4시와 9시, 3월 14일 오전 10시에 같은 장소에서 15~40명의 사람들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계성학교 학생으로 고향에 내려와 있던 김도길(金道吉)은 동네 사람 박봉술(朴鳳述)과 김성윤(金性允)을 설득하여 또 한 번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박봉술 등은 3월 14일 저녁부터 다시 마을을 돌아다니며 독립 만세를 부를 사람을 모았는데, 이때 권유받아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3월 14일 밤 9시 식사를 마친 후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인동면 진평동 뒷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진평동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해산 시키고 주도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을 붙잡았다. 이때 일제 경찰의 검거망을 피해 도주하여 붙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3월 20일 솔잎을 사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제 헌병 2명과 마주쳤는데, 헌병들에 의해 강제로 분견소로 끌려갔다. 분견소에 이르러서 일제 헌병들은 진평동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하라고 취조하면서 난폭하게 구타하였다. 자백할 때까지 계속 구타할 것이라는 헌병들의 협박과 폭력에 결국 이기지 못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곧바로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4일 공소 기각, 1919년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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