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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順秉

蔡順秉

1904. 6. 24 ~ 19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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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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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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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4년 6월 24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제주읍(濟州邑) 일도리(一徒里)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인 채수강(蔡洙康)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본적지는 전남 함평군(咸平郡) 함평읍(咸平邑)이었다. 1919년 당시 서울 안국동(安國洞) 69번지에 거주하였으며 사립 국어보급학교 고등과에 재학 중이었다. 양부 채수강은 1910년 강진군수로 재임하였고, 1914년에는 함평군수, 1919년에는 영광군수로 재임하였다. 친아버지 채수용(蔡洙鎔)은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휴학의 수습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 이후 서울의 학생들은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앞에서 2차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남대문역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기 위해 ‘경고’라는 제목의 격문 400여 장을 작성하여 3월 4일 배포하였다. 1919년 3월 4일 같은 집에서 하숙하는 중동학교 학생 김종현(金宗鉉), 경성고등보통학교 학생 최강윤(崔康潤)과 함께 안국동(安國洞) 박태병(朴台秉)의 집에 모여서 격문을 제작하였다. 격문은 3월 5일 오전 8시 반에 남대문역 앞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므로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였다. 3월 4일 밤 소격동(昭格洞) 일대에서 격문을 배부하였다. 3월 5일 아침 김종현·최강윤 등과 함께 남대문역으로 나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휘두르고 붉은 천을 흔들며 행진하는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매일신보사 앞까지 시위행진을 계속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고 미결구류일수 중 60일이 추가로 본형에 산입된 채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같은 해 5월 14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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