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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治洪

治洪

1892. 10. 25 ~ 194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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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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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羅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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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92년 10월 25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다도면(茶道面) 방산리(芳山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광산치홍(光山治洪)이라는 이름을 썼다. 약 9년 동안 면서기를 하였고, 이후 소작농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944년 일본의 패전을 전망하면서 사람들에게 시국담을 얘기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44년 4월 14일 김기칠(金其七)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한 시국담을 논하면서 주위 사람에게 일본의 패망을 전망하였다. 이 시국담에서 “일본이 싱가폴을 점령하였지만 미·영이 반격해 싱가폴을 회수하였고, 다시 일본군이 징병제를 실시해 싱가폴을 회수할 게획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미군의 비행기는 저공 비행하여 일본을 공습해 일본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 반면, 일본은 아무리 고사포를 발사해도 헛수고”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일본인과 전쟁 중인 것과 다름없으며 기회가 오면 일본에게 역습을 가하고 관청을 습격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할 것을 이야기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말을 유포함으로써 독립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45년 3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육해군형법과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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