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源
泰源1900. 3. 20 ~ 1965. 5.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기정 징토시민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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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0년 3월 20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대화리(大和里)에서 태어났다. 지역사회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3월 경상남도 도평의원(道評議員) 김기정(金淇正)이 도평의회 석상에서 “조선인은 교육이 불필요하며, 조선어 통역도 철폐해야 한다”는 취지의 매국적인 주장을 하자 박봉삼(朴奉杉) 등 십여 명의 애국지사들과 함께 김기정 징토시민대회(懲討市民大會)를 열었다. 징토시민대회에서 김기정의 친일 발언을 규탄하는 등, 김기정의 만행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렸다. 또한 공동 절교를 통지하며,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일로 박봉삼 등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10일 황덕윤(黃德允)·황봉석(黃奉石) 등 35명의 동지와 함께 동면(同面) 조일정(朝日町) 불교 포교실에서 만나 5월 12일 오후 1시를 기하여 시민대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이 시민대회에서 금전 모금을 하여, 구금된 인사들을 위한 변호인을 선임하여 석방운동을 할 계획이었다. 이것을 위해 먼저 일반 시민에게 알릴 선전물을 1차로 배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탄압에 의해 선전물 배포와 시민대회는 무산되어 실행하지 못하였다. 5월 13일 황덕윤과 황봉석은 「근조(謹弔)」라는 제목의 격문을 500장 인쇄하여 시내 각처에 배포하였다. 격문에는 구금 인사들의 석방과 동포들의 호응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동면 대화정의 김기정 집을 습격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건물을 부쉈다. 이어서 통영경찰서로 몰려가 구금 인사의 석방과 면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상해죄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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