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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男

孝男

1905. 6. 22 ~ 196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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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孝男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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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옥구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905년 6월 22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10월 2일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부(瑞穗支部)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27년 11월 20일 일본 농장회사인 주식회사 이엽사(二葉社)의 소작료가 75%의 고율에 달하자,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에서는 농장 지배인 사이토 신이치(齋藤信一)와 소작료 감액을 교섭하였다. 소작료를 45%로 낮출 것을 요구하였으나 사이토 신이치가 교섭을 거부하자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에서는 농장의 소작인들을 설득하여 소작료 감면 이전까지 소작료를 납부하지 않기로 하고 이를 농장 측에 통지하였다. 이 사건으로 1927년 11월 24일 옥구군 서수면 경찰관주재소 일제 경찰에 의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위원장 장태성(張台成)이 협박죄와 명예훼손죄로 붙잡혔다. 장태성은 임피면(臨陂面) 경찰관주재소에서 구류되었다가 이후 군산경찰서로 압송될 예정이었다. 압송 소식을 접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는 장태성을 탈출시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장태성 탈출을 위해 모인 3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임피면 경찰관주재소로 이동하였다. 1927년 11월 25일 임피면 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한 후 앞장서서 주재소 안으로 난입하여 군중과 함께 “장태성을 돌려다오. 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군산까지 따라간다”라고 외쳤다. 임피면 경찰관주재소 측이 요구 사항을 무시하자 장태성을 체포한 도순사(道巡査) 김종현(金宗鉉)을 끌어내어 구타하였다. 그 다음 실내에 구금 중이던 장태성의 포승줄을 칼로 절단하고 그를 추켜올려 헹가래를 치며 탄성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임피면 경찰관주재소를 떠났다. 같은 날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의 간부 박상호(朴相浩)가 붙잡혀서 서수면 경찰관주재소에 구금되자, 오후 10시경 신문관(申文官)·이성순(李聖淳)·정영운(鄭永云)·이기렬(李基烈) 등과 함께 주민 200여 명을 이끌고 서수면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임피면과 서수면의 경찰관주재소 습격 소식을 들은 일제는 군산경찰서 경찰관 수십 명을 서수면으로 파견하여 서수면·임피면 경찰관주재소 습격에 참여한 주민들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간부인 박상호·김행규(金杏奎) 등을 비롯한 30여 명의 조합원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구금탈취죄와 소요죄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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