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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仲麟

仲麟

1892 ~ 19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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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仲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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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만주 망명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28세로,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에 거주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20년 한민회(韓民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훈춘현 사도구(四道溝)에 위치한 한민회 독립군 병영에서 약 6개월 간의 병식훈련을 받았다. 한민단(韓民團)·한민회군(韓民會軍)으로도 불리는 한민회는 만세운동 이후 1919년 4월 북간도 훈춘현에서 이광택(李光澤)·황병길(黃丙吉)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로, 조직 내에 군무부를 두어 200~300명의 독립군을 편성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한민회 병영에서 군사훈련을 마친 뒤에는 한민회 군무부장(軍務部長) 최경천(崔慶天) 휘하에서 활동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최경천은 한민회를 조직하던 당시 참여하여 1920년 군사부가 개편될 때 군무부장을 맡은 인물로, 1920년에 북간도에서 무장투쟁을 지휘하였다. 이때 최경천의 부하로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1920년 10월 초 중국 마적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훈춘사건을 조작하였고, 이를 빌미로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출동시켜 독립군의 근거지였던 한인 마을을 파괴하고 무차별적으로 한인을 살해하였다. 훈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한민회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 최경천 휘하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며 무장투쟁을 펼치던 도중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압송되던 중 1920년 10월 26일 훈춘현 양진구(陽進溝)에서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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