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芝杓
芝杓미상 ~ 1920. 9.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구월산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은율 군수 처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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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는 알 수 없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활동 당시에는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에 거주하였다.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고, 황해도 은율군수(殷栗郡守)를 처단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대한독립단은 1920년 8월경 류허현에서 박장호(朴長浩)·백삼규(白三圭)·조맹선(趙孟善) 등을 중심으로 통합 결성된 단체이다. 이들은 농업 협동과 민정, 교육활동 뿐만 아니라 직접 독립군단을 편성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이에 만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20년 4월경 정치적 지향의 차이로 공화주의(共和主義)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따르는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과 복벽주의(復辟主義)를 따르는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으로 분화되었으나, 대한독립단의 명목 속에서 협조는 지속되었다. 이때 처음에는 대한독립단에 참여하였으나, 분화 단계에서는 민국독립단 측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평안도·황해도 등 서북지역에 기반을 두고 국내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대한독립단의 활동은 더욱 확장되었다. 1920년 6월경 콴뎬현(寬甸縣)에 거점을 두고 있던 대한독립단의 교통부장(交通部長) 양기하(梁基瑕)는 이명서(李明瑞)·민양기(閔良基)·이지균(李芝均)·고두환(高斗煥)·박기수(朴基洙)·주의환(朱義煥)·원사현(元士鉉) 등 황해도 출신의 단원들에게 황해도 지역에서의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을 지시하였다. 이때 함께 지령을 받아 국내 잠입의 임무를 받았다. 이명서를 대장으로 삼고 같은 해 7월 26일 만주를 출발하여 8월 3일 평북 박천군(博川郡)에 도착하여 박중서(朴重緖)와 변춘식(邊春植)을 입단시켰다. 그해 8월 7일 오후 9시경 평남 대동군(大同郡) 용악교(龍岳橋)에서 일본 순사 모리모토 슌페이(森本春平)가 정지·검문을 요구하자, 급히 그를 사살하고 도피해 목적지인 황해도로 이동하였다. 1920년 8월 14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에 도착하여 협력자인 김난섭(金蘭燮)·홍원택(洪元澤)·박능묵(朴能黙)으로부터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과 군참사(郡參事)인 고학륜(高學倫)이 친일파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들과 경찰주재소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원사현과 고두환 등이 고학륜, 대장인 이명서와 민양기 등이 주재소 공격을 담당하기로 하자, 홍원택 등과 함께 최병혁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8월 15일 은율로 이동하여 그날 밤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홍원택과 함께 군수의 집으로 이동하여 월담 후 “임시정부의 명령으로 너를 죽인다!”라고 외친 후 최병혁을 처단하였다. 한편 고학륜이 재빨리 도주하여 죽음을 모면하자 이들과 함께 주재소를 공격하는 민양기 등에게 합류하여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아지며 적의 증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순사 야마이 키로쿠(山井喜六)에게 부상을 입히고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으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황해도의 송화군(松禾郡)·장연군(長淵郡)을 전전하다가, 1920년 8월 24일 해주로 재잠입하여 대한독립단의 지단장(支團長) 겸 의용대장(義勇隊長)인 이성룡(李成龍)을 만나 군자금 지원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이명서의 주도 하에 김창현(金昌鉉)·최명현(崔明鉉) 등의 독립단 간부들의 지원을 받아 황해도 지역에서의 활동을 다시 정비하고자 하였다. 이에 이명서의 통솔 하에 구월산 인근인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초리면(草里面) 도명리(道明里)로 이동하여 근거지를 마련하고, 동료를 모아 구월산대(九月山隊)를 결성하였다. 1920년 9월 10일 협조자인 목사 우종서(禹鍾瑞)가 적의 사복경찰에게 속아 근거지의 위치를 노출시키면서, 출동한 일제 군경과 교전하게 되었다. 수적 열세와 소지한 무기가 권총 뿐이었지만 4~5시간 동안 일제 군경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2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끝내 제압되었고, 민양기·고두환·변춘식 등이 중상을 입고 붙잡혔다. 이때 대장 이명서를 비롯해 박기수·주의환·원사현 등과 함께 현장에서 끝까지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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