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泰英

泰英

1888 ~ 192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英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경성(鏡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주북사(朱北社)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이전에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9년경 만주로 건너가, 1921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고 의용군(義勇軍)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고향에서 의병 동지들과 함께 충의안(忠義案)이라는 격문을 작성하였다. 1909년 이후 ‘남한대토벌(南韓大討伐)’ 등 일본군에 의한 의병 진압이 진행되자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21년경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지속하였다.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이상룡(李相龍)이 조직한 군정부(軍政府)이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만주 지역에 조직된 군정부 등 무장독립단체를 임시정부 산하에 두려는 노력을 하였다. 이를 위해 여운형(呂運亨)을 특사로 파견하여 설득하였고, 같은 해 11월 군정부는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동시에 명칭을 서로군정서로 개칭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조직 당시부터 무장독립운동 단체로, 무력을 통해 국내로 진입, 광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때 서로군정서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서로군정서는 1921년 2월 11일부터 4일간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에서 개최한 국민회의를 통해 국내로 진격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위 진격 결의에 따라 의용군으로 국내에 출동했다가, 함경남도 갑산(甲山)·성진(城津)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