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學祐
學祐미상 ~ 1921. 11. 17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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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9)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1921년 지안현(輯安縣) 일대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지단장(支團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의병장 유인석(柳麟錫) 문하의 의병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된 무장독립단체였다. 이들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지역인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原堡) 일대를 기반으로 조직을 설립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결성 초기 단계인 1920년대에 서간도 지역의 9개현에 지단을 설치하면서 활발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지역인 지린성(吉林省) 지안현 이도구(二道溝) 일대 역시 대한독립단의 지단이 설치된 서간도 일대였다. 이 지역 지단장으로서 지안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무장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실제 대한독립단은 1919년 이후 서간도의 각 지단에 재무부를 설치하여 군자금 모집에 힘을 기울이면서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한독립단은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면서 악명 높은 지안현 일대의 일본인 경찰과 친일파 소탕을 결의하여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1920년 2월경 대한독립단원들이 지안현 태평구(太平溝)에 있는 친일세력인 민단(民團) 지부를 습격하여 민단의 지부장 강달주(姜達周) 등을 처단한 사건이 그 중 하나였다. 강달주는 1919년 지안현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당시 주일관(朱一寬) 등 만세운동의 주도자를 민단 사무소를 파괴했다고 하여 일제 경찰에 밀고한 대표적인 일제의 밀정이었다. 이후 대한독립단은 국내의 황해도와 평안도에도 지단을 설치하면서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국내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보민회(保民會)·제우회(濟友會) 등 친일단체를 통한 한인 포섭 활동, 일제 경찰과 수비대의 무장 강화 등에 직면하였다. 이에 근거지를 류허현·지안현·환런현(桓仁縣) 등으로 계속 이전하면서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더구나 1920년 10월부터 전개된 일제의 만주 침략과 독립군 ‘토벌’작전으로 인해 대한독립단은 통합된 무장독립운동단체로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안현 일대의 한인들과 대한독립단원들은 일제 수비대의 추격을 받으면서 점차 근거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1921년 11월에 일본군 수비대는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의 대안(對岸)을 넘어 서간도 일대의 독립운동세력과 자주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독립단원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1921년 11월 17일 일본 수비대의 갑작스런 습격을 당하였고, 교전을 벌이던 중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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