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協洙
協洙미상 ~ 19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함경남도 홍원(洪原)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알 수 없지만, 북간도 화룽현(和龍縣)에서 명동학교(明東學校)를 다니고 졸업한 것으로 보아 1920년 사망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이후 의군부(義軍府) 참모부(參謀部)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명동학교는 평소 항일독립정신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교사와 학생들이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교였다. 따라서 일제의 감시를 받은 주요 교육기관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4월 북만주 옌지현(延吉縣)에서 조직된 의군부의 참모부(參謀部) 서기(書記)로 활동하였다. 의군부는 총재 이범윤(李範允) 등이 같은 해 4월 조직한 무장투쟁단체로, 주요 활동지역은 화룽현 일대와 왕칭현(汪清縣)·훈춘현(琿春縣) 등지였다. 특히, 의군부는 북간도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그해 7월부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연합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국경의 일제 경찰과 헌병대를 격퇴하고, 한국인 순사 및 헌병보·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어서 8월부터는 북로군정서와 연대하여 크게 승리한 청산리전투의 어랑촌전투(漁郎村戰鬪)에도 참여하고 군자금 모집에도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 북간도 일대에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연이어 참패한 일제는 이 일대를 토벌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침략의 명분이 필요하였다. 이에 일제는 같은 해 10월 2일 중국인 마적(馬賊)을 일부러 동원해 자국의 훈춘 영사관 분관을 습격하게 하는 이른바 ‘훈춘사건’을 빌미로 하여 북간도 토벌을 감행하였다. 10월 7일 북간도 일대에 20,000여 병력이 투입되어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은 물론 의군부의 상당수는 이를 피하기 위해 흑룡강 건너편의 노령으로 피신하였다. 독립군 토벌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일본군은 10월 12일부터 조선군 제19사단 병력을 동원해 민간인까지 학살하는 일명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는 한인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고, 학교와 교회, 민간인 가옥을 무차별로 불태우는 만행이었다. 이때 모교인 명동학교도 소각당하고, 교장이 구속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아울러 숨어 있는 독립군을 토벌하고, 숨겨 준 조력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북간도 일대에서만 약 3,500명이 무차별 총격과 방화로 인해 살육당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옌지현 의란구(依蘭溝)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살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