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언
張斗彦1881 ~ 1920. 10. 25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22년에 보고된 「간도사건(間島事件)에 의한 선지인(鮮支人) 사상자(死傷者) 및 소각가옥(燒却家屋) 조사(調査)의 건」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40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서삼포(西三浦)에 거주하였다. 1920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통신부장으로 활동하다가 희생되었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는 주로 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미주에서 창설된 국민회 등과 구별하기 위해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라고도 불렸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중심으로 대한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본부를 옌지현(延吉縣) 하마탕(蛤蟆塘)에 설치하고, 옌지·왕칭(汪淸)·허룽·혼춘(琿春) 일대를 중심으로 만세운동과 무장항일투쟁 등을 주도하였다.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을 나누고, 다시 행정조직을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구분하였다. 본부 아래에는 동·서·남·북·중앙 5개의 지방회와 8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생활을 지원하며, 군자금 모집과 무기 구입을 통해 독립군 부대를 편성하였다. 이후 북간도에 거주하는 한인동포 보호와 군자금 모집, 분산되어 있던 만주 일대 독립군들을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20년 지린성 허룽현에서 대한국민회에 가입하고, 통신부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대한국민회는 홍범도(洪範圖) 부대에 합류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후, 1920년 10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부터 1921년 5월까지 약 8개월 동안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과 한인사회 등을 초토화하기 위해 무차별 학살과 방화 등을 자행하였다. 1920년 10월 19일 일본군 제19사단 나리타(成田) 중좌(中佐)가 이끄는 회령수비대(會寧守備隊)는 허룽현 학성(鶴城)과 강성동(江城洞) 일대를 습격하였다. 이때 허룽현 서동포(西洞浦)에서 대한국민회 통신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동지 허운태(許運泰)와 성명미상의 통신부원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통신부원은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시 붙잡혀 사망하였고, 허운태와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일본군에게 함께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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