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오
張成五1890 ~ 1920. 10. 19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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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22년에 보고된 「간도사건(間島事件)에 의한 선지인(鮮支人) 사상자(死傷者) 및 소각가옥(燒却家屋) 조사(調査)의 건」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32세로, 1890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 지역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이하 국민회)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4년 이동휘(李東輝)가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조직한 국민회(國民會)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옌지(延吉)를 중심으로 세력을 재구축하였다. 이들은 북간도 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활동하였기에 구미 등지에서 창설된 국민회와 구별하기 위해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라고도 불린다. 이후 옌지, 왕칭(汪淸), 허룽(和龍), 훈춘(琿春) 일대를 중심으로 만세운동 및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국민회는 5개의 중앙총부와 52개의 지회로 구성되었으며, 초기 중앙총부의 회장에는 구춘선(具春先)이, 부회장으로는 강구우(姜九禹)가 임명되었다. 이들 단체는 독립군 양성은 물론 북간도에 거주하는 한인동포 보호 및 군자금 모집, 분산되어 있던 만주 일대 독립군들을 통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홍범도(洪範圖)의 부대에 합류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만주 일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시기 지린성(吉林省) 허룽현에서 국민회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봉오동 전투에서의 패배에 이어 청산리 전투에서도 패배한 일본군은 1920년 10월 간도 일대에서 한인 양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한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그해 10월 19일 일본군 제19사단 나리타(成田) 중좌(中佐)가 이끄는 회령수비대(會寧守備隊)가 허룽현 학성(鶴城)과 강성동(江城洞) 일대를 습격할 때, 임학욱(林學旭)·지계순(池啓舜)·이홍래(李鴻來)·최홍택(崔鴻澤) 등과 함께 일본군에게 붙잡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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