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화
張泰嬅187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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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 하발면(下鉢面) 조양리(朝陽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뒤에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간도의 옌지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 제4구 신촌(新村)에서 정착하였다. 천도교에 입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부터 열렬한 독립사상을 품고 있었다. 1922년 용정에 종리원(宗理院)을 설치하고 동흥(東興)중학을 비롯하여 각지에 전교소를 세웠다. 1924년 1월경 의열단(義烈團)·의용군사회(義勇軍事會)·광복단(光復團)·국민회(國民會)·독군부(督軍府) 5개 독립운동 단체의 일부 지사를 규합하여 대동회(大同會)를 조직하였다. 총부(總部)를 어무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 두었고, 총부 중앙위원장은 구춘선(具春先), 총부 위원에는 마진(馬晋)·김승극(金承極)·박대영(朴大英) 등이 역임되었다. 또한 안투현(安圖縣) 흥도자(興道子)에 대동회 지회(支會) 집행부를 설치하였는데, 연두익(延斗翼)이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이고, 김용균(金鎔均)·이근용(李根鏞) 등이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특파원 김관(金瓘)이 간도지역에 군자금을 모금하러 오면서, 대동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전원(宣傳員)으로서 독립사상 선전문 배포 및 군자금·대원 모집 활동을 하였다. 대동회는 각 단체의 위원합의제도로 운영되었으나, 이후 모 단원의 군자금 횡령을 계기로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11월경, 거주하고 있는 용정촌 부근에서 선전문을 배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공채를 제시하며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1월 28일 잡화상 지남극(池南極)에게, 30일 자산가 오명언(吳明彥)에게 모금활동 하던 것이 영사관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12월 28일에 붙잡혔다. 이 당시 독립사상 선전문과 액면 500원의 독립공채권을 가지고 있었다. 1925년 5월 8일 이른바 강도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에는 천도교인들과 같이 독립운동을 계속하여 나갔다.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천도교도를 통해 독립운동 단체들에게 보내며 연락원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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