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근
全義根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공립협회
- · 권업회
- · 간민회
- · 독군부
- · 적기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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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전이근(全利根)과 김의근(金義根), 김이근(金利根·金二根)이다. 1907년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회원이 되었다. 공립협회는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된 단체로, 애국계몽운동의 전개, 한국인 간에 서로 돕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였다. 공립협회의 회원으로서 애국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였다. 일본에게 차관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는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 일어나자 1907년 7월경 10원을 기부하였으며, 같은 해 11월경에는 국내에서 발간된 제국신문(帝國新聞)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자 이를 돕기 위해 3원을 전달하였다. 또한 공립협회의 운영을 위한 의연금을 내기도 하였다.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중 1908년 1월 8일 만주리아선을 타고 공립협회 회원 김성무·유성운·주영휘·이고담·오문여·신영한·김홍근·오석만·김교원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귀국한 이후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한인들의 자치와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결성된 권업회(勸業會)의 회원이 되었다. 1911년 8월 29일 블라디보스토크 한민학교(韓民學校)에서 개최된 국치일 행사에 참여하였다. 1912년에는 권업회 간도지회(間島支會)를 설립할 목적으로 중국 왕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로 파견되었다. 이후 나자구를 근거지로 활발한 항일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13년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에서 조직된 간민회(墾民會)에 가입하였다. 간민회는 북간도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관할하는 자치기관이었다. 중국 지방정부와 협의 하에 한인에 대한 세금 징수 등과 같은 행정업무를 자치적으로 수행하였다. 간민회에 가입한 이후 의사원(議事員)이 되어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월 하순경에는 구춘선(具春先)·김영학(金永學)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북간도 지역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3월 28일 1,000여 명의 한인들이 모인 독립축하회가 개최되는 데 앞장섰다. 한편 1919년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의 단원이 되어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철혈광복단은 1919년경 북간도와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였다. 일제 주요 기관 습격 및 의연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와 함께 1919년 훈춘대한국민회지회(琿春大韓國民會支會) 총회에 참가하였고, 포수영(砲手營)의 결사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1920년 8월 12일에 작성된 일제 측 정보 보고 문서에 따르면,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지휘를 받고 있는 1919년 4월에 결성된 독립운동단체의 총무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의사장 전석규(全錫奎), 재무 최정국(崔正國), 의사원 박창준(朴昌俊)·오기연(吳璣淵)·박순호(朴舜顥)·이성렬(李聲烈) 등과 함께 연해주와 나자구 일대의 통신 연락 및 무기의 운반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였다. 192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합막당 상촌에서 북간도 동부, 서간도, 훈춘 동부, 연해주 일대 존재하는 독립군 단체 대표자들의 모임이 개최되었다. 이때 홍범도(洪範圖)·구춘선·이범윤·김광국(金光國)·홍림(洪林)·서성권(徐成權)·황병길(黃丙吉) 등 약 40명과 함께 참석하였다. 1920년에는 왕칭현 춘경향(春耕鄕) 나자구에 근거를 둔 대한의사부(大韓議事部) 의사부장(議事部長)직을 담당하였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계통의 독립운동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독군부(都督府) 총무국장(總務局長) 겸 의무국장(義務局長)직을 담당하였다. 독군부는 1920년 5월 북간도 지역에 있던 항일 무장독립군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했던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로 추정된다. 대한북로독군부에 국민회 소속 부대도 참여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독군부는 대한북로독군부로 추정된다.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한국독립군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일본군이 간도 지역으로 들어왔다. 이들에 의해 많은 한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었다. 이것을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고 한다. 이때 활동하던 지역에도 일본군의 만행이 자행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강렬하게 저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변 이후에도 항일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22년 나자구에서 결성된 지방자위단(地方自衛團) 총무직을 담당하게 되었다. 1923년에는 고려혁명군후원회 고문직을 맡았으며, 1925년 3월에는 적기단(赤旗團) 행정부(行政部) 자위단(自衛團)의 간사직을 담당하였다. 일제에 직접적으로 맞섬과 동시에 독립군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 6월 26일 왕칭현 춘경향자 나자구 삼도하자 제5구 경찰분서 소속 경찰들이 자택을 포위하고 가택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박영식(朴永植)·박곽윤(朴郭潤)을 잡아들였다. 당시 박영식·박곽윤은 국내로 잠입하려고 하였고, 이때 이 사실을 알고 그들이 국내에 잠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붙잡힌 박영식·박곽윤을 보증하여 일제 경찰로부터 풀려날 수 있게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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