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정득영

鄭得永

1876. 6. 1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득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구성(龜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76년 6월 19일 평안북도 구성군(龜城君) 서산면(西山面) 입석동(立石洞)에서 태어났다. 성장배경 및 가족관계는 확인되지 않으나 일찍이 만주로 이주하여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에서 펑톈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 즙사하(葺沙河) 부근에서 거주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국외 한인사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독립운동단체들과 민간단체들이 설립될 때 조선인조합에 융화보(融和堡) 지부장, 지안현 구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이 원활히 자치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1919년 4월에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조직되고 연말에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의병계열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대한독립단의 조직은 도총재부, 총단 그리고 지단, 남만주제1사단 등 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총단에는 군사부, 고문 소모장 등이 있는데, 당시 지안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7~8월경에는 집서현(輯西縣) 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관할하의 한국인들을 관리하였다. 같은 해 봄쯤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 촉진기관을 설립하였는데, 당시 이용식(李永植), 최석순(崔碩淳)등과 같이 단원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2년 8월 23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가 개최될 때 단원 대표 23명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다. 그 결과 8단(團) 9회(會)가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설립하자 통의부에 가입하여 지동지단장(輯東支團長)으로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1922년 12월 29일부터 1923년 1월 8일까지 대한통의부는 중앙회의를 개최하여 헌장(憲章) 수정, 사판장정(查判章程) 제정, 호적조사, 지방제도 설치, 군자금 모집 등 안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는데, 참석하여 같이 방안을 모색하였다. 1923년 3월 초에는 지방총관으로 역임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