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七
鍾七186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봉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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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충청남도 목천군(木川郡) 갈전면(葛田面) 상석항리(上石項里,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봉항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나이가 47세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어상(魚商)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09년 (음)12월 한봉수(韓鳳洙, 일명 한봉서) 의병부대에서 활약하던 이정구(李正九)와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정구는 1909년 (음)4월 한봉수 의병부대에 가담한 이후 일본군 수비대에 의병의 소재를 밀고한 청주군(淸州郡) 백자동(百子洞, 현 천안시 수신면 백자리) 이장 박씨와 청주헌병대 소속 밀정인 박내승(朴來升)을 처단하였다. 충북 괴산군(槐山郡) 서면(西面, 현 청주시 오창면과 북이면 인근) 사치(沙峙, 모래재)에서 우편물을 호송하던 일본군 수비대 2명을 처단하였으며, 청주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이정구는 재회를 약속하며 한봉수 의병부대에서 활동을 그만두고 목천으로 돌아와, 송창운(宋昌云)과 함께 갈전면 석두리(石頭里)에 위치한 홍원강(洪元江)의 집에 은신하고 있었다. 1909년 (음)12월 이정구·송창운이 머물고 있던 홍원강의 집으로 찾아가 협의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같은 해 (음)12월 청주군 북강외이면(北江外二面) 양청리(陽靑里, 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양청리)와 갈전면 소근리(所斤里)·삼성리(三星里, 현 천안시 병천면 봉항리) 등의 지역에서 수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다가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0년 3월 9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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