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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春化

春化

미상 ~ 190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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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春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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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도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자료의 한계로 출생년도와 출신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강원도 정선(旌善)에서 활동한 이도총(李都摠) 의병부대의 부장(部將)이 되어 활동하였으며 1907년 12월 정선군 남면(南面) 증산리(甑山里) 도사동(道士洞)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도 활약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였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부대에 참여하면서 그 양상이 의병 전쟁의 양상으로 흘러갔다. 특히 강원도에서는 1907년 8월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특무정교(特務正校) 민긍호(閔肯鎬)가 선두에 서서 원주에서 부대를 일으켜 충청북도 제천(堤川)의 이강년(李康秊) 부대와 합세하여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하는 연합부대인 관동창의대(關東倡義隊)를 조직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한 13도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에는 강원도를 비롯하여 경기도, 충청도의 수많은 의병들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강원도는 유격전의 형태로 많은 의병항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당시 강원도의 특성상 직업군이 포수층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산악지형을 활용한 유격전의 형태로 일본군의 규모와 무기상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족적인 의병 전쟁의 기세를 올려가던 1907년 12월 9일 이도총 의병부대의 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정선군 남면 증산리 도사동에서 이도총이 거느린 의병 약 300명이 일본군과 격돌하는 치열한 교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부대의 131명의 의병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때 이도총 의병부대의 부장으로서 전투를 진두지휘하다가 붙잡혔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기회를 보아 탈출을 기도하다가 실패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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