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苾坤
苾坤1864. 4. 7 ~ 1909. 8.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상종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4년 (음)4월 7일 경상북도 의성현(義城縣) 오동(梧洞)에서 동강(桐岡) 이희정(李希程)의 후예 이익강(李翊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형원(馨遠), 호는 죽포(竹浦)이다. 유학적 명망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가학(家學)으로 성장하였고, 일찍이 사우(士友)의 추앙이 높아 태묘(太廟) 향실(香室) 참봉(參奉)을 지냈다. 성품과 기질 역시 강직하고 체력이 장대하였으며 의협심이 강하였다고 한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 등을 계기로 경북 의성(義城)지역에서는 1896년 (음)2월 12일 김상종(金象鍾)이 의병을 일으켰다. 이에 호응하여 주변에 통문(通文)을 돌리고 의병을 모집하고 의병부대에 들어가 중군(中軍)을 맡았다. 김상종 의병부대가 경기도에서 남하한 이천(利川)의 김하락(金河洛) 의병부대와 합세하여 연합의병부대를 구성하고, 경북 안동(安東)으로 북상하는 대구관군과 교전하였다. 1896년 5월 20일 비봉산전투(飛峯山戰鬪)에서는 전과를 이루어 냈다. 5월 26일 전투에서는 거센 모래 바람으로 말미암아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결과 김상종 대장은 의병부대를 해산시키고 산을 내려와 은신하였다. 이 무렵 김상종 대장을 대신하여 대장에 올라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의성군 춘산면(春山面) 사미(思美)와 옥산면(玉山面) 황산(黃山) 일대에서 전투를 펼쳤다. 하지만 고종(高宗)의 의병해산 조칙을 받들고 후일을 기약하며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비봉산전투 이후 새롭게 편성된 의병부대의 모습은 자세하지 않지만, 구성원 명부인 「의려조직명부」를 보면 그 규모가 적어도 50명은 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의진 해산 당시 군수(郡守)에게 총기를 반납한 사실을 기록한 「오동총납상기(梧洞銃納上記)」를 보면, 무기는 총기 21정 이상을 갖추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3월 가산(家産)을 내어 격문(檄文)을 돌리고 군사를 모집하여 다시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의병부대를 이끌고 의성·금성(金城)·의흥(義興)·신령(新寧)·영천(永川) 등 여러 고을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펼쳤다. 팔공산(八空山)으로 이동하여 의병부대를 정비한 다음 다시 의흥 방면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일제 군대의 기습을 받자 주위에서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단호히 거부하고 항전하였다. 재적부에 따르면 1909년 8월 7일 사망하였다. 한편 다른 기록에 따르면, 1907년 (음)7월 30일 일제 군대에 붙잡혀 안동수비대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같은 해 (음)8월 6일 일제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호통을 치며 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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