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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명

印鍾鳴

186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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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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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평산(平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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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박기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박기섭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상월면(上月面) 도화정(桃花亭)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43세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9월경 박기섭(朴基燮, 본명 박정빈(朴正斌)) 의병부대에 들어가 전령(傳令)을 담당하였고, 1908년에는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1907년 8월 목천군수(木川郡守)를 역임한 박기섭은 전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 등으로부터 거병을 은밀히 권유하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해주(海州)·재령(載寧)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박기섭 의병부대는 간부 35명 가운데 26명이 황해도 평산 출신이고, 16명이 화서(華西)·의암(毅庵) 계열의 인물들이었다. 또한 의병장을 위시하여 유학자들의 지휘 하에 농민과 포수, 강화진위대의 해산 군인들까지 참여한 수천 명의 의병이 중대단위로 편성되었다. 이 의병부대는 평산 도평리(都平里)를 시작으로 황해도 각지로 분산·파병되었고, 장수산·멸악산 등을 거점으로 일제 침략기간 등을 공격하는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9월경 박기섭 의병부대에 들어간 이후 평산군 마산면(馬山面) 주민들로부터 총 30자루를 징발할 때, 전령(傳令)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5월부터는 중군장(中軍將) 우창렬[禹昌烈, 당시 중군장인 우병렬(禹炳烈)의 오기 또는 이명으로 추정]의 명을 받아 서울에서 총 500자루를 구하는 소임을 맡았다. 그리고 경성부 동서(東署) 연화방(蓮花坊) 전간(田間)에 근거지를 두고, 같은 해 10월까지 총 500자루를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동부경찰서에 수감되었고, 그해 11월 26일 경성지방재판소로 인계되었다. 1908년 11월 30일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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