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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泰鴻

泰鴻

1922. 7. 18 ~ 199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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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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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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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922년 7월 18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 청계리(淸溪)에서 태어났다. 청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8년 4월 일본으로 유학을 가 나가노현(長野縣)에 있는 현립 카미이나농업학교(上伊那農業學校)에 입학하였다. 이때 영목수위(永木秀威)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였다. 1940년 3월 같은 학교 기숙사에서 동향 선배인 이정우(李正雨)를 만나 조선 민족과 일본인은 절대로 융합될 수 없으며, 소위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은 절대 실현 불가한 일이라고 말하며 서로의 뜻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 독립된 조국의 지도자가 될 것을 결의하고, 조선어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이정우의 이야기에 서로 간에 한국어를 사용하자며 적극 호응하였다. 이후에도 이정우를 만나 지원병이 되느니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낫다고 하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1942년 12월 27일 카미이나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3년 1월 귀국한 이후에도 항일·반전(反戰)운동을 이어갔는데, 징용과 징병을 피하기 위하여 5월 25일에 영일군의 농회기수(農會技手)로 취직하였다. 이후에도 농촌계몽활동을 하며, 반전 의식을 고취하고 일제의 패망을 선전하던 중 6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2월 14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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