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鶴儀
鶴儀1906. 3. 24 ~ 1985. 2.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성단(도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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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6년 3월 24일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 산성면(山城面) 무암동(武岩洞)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6년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을 가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다니며 고학하였다. 세이소쿠영어학교 재학 중 김호구(金豪九)와 함께 망국의 지식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였다. 1920년대 일본에서는 무정부주의를 수용한 지식인들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구상과 실천을 도모하고 있었는데, 당시 일본의 문필가이자 지식인 니이 이타루(新居格)를 초청하여 좌담회를 열고 무정부주의 사상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또 재일 아나키스트들이 집단 거주하던 계림장(鷄林莊)의 정찬진(丁贊鎭)·원심창(元心昌)과 교유하였다. 1928년 3월 하순 김호구·정찬진·오병현(吳秉鉉)·장명학(張命學)·김양복(金養福)·송주식(宋柱軾) 등과 함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운동장에 모여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일성단(一聲團)을 조직하였다. 일성단은 일왕을 암살하고, 주요 침략 기관을 파괴할 것을 투쟁 목표로 삼았고, 행동강령으로 기밀 엄수와 이탈 불허, 변절자 처단 등을 결의하였다. 일성단은 상하이와 만주에서 무기를 입수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한편, 일자를 정해 거사를 치르기로 하였다. 일성단은 동지 규합을 위하여 10월경부터 5회에 걸쳐 『흑전(黑戰)』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여 국내외로 우송하였는데, 김호구와 함께 이 기관지의 원고 작성에 참여하였다. 이후 1929년 5월에 그동안의 선전 활동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 무기도 구입할 목적으로 김호구와 오병현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두 사람은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다미면의 씨름 대회에서 ‘농민에게 고한다’라는 제목의 전단을 배포하였다. 전단의 주요 내용은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농민들의 단결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성단 조직이 노출되었고, 1929년 6월 하순 김양목·송주식 등 동지들과 함께 도쿄에서 체포되어 평양으로 압송되었다. 1930년 11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신문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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