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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元甲

元甲

1925. 9. 10 ~ 1989.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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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元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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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宜寧)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의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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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국위안회(祖國慰安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조국위안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5년 9월 10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유곡면(柳谷面) 조목리(鳥木里)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도쿄(東京)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예과에서 고학을 하며 재학하던 중 동료인 신문배달부 조선인 안(安)모로부터 한국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직장에서의 민족차별에 분개하였다. 동료 토공 좌등용(佐藤勇)으로부터 해외의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조국 광복에 정진하려는 결심을 하였다. 동료 토공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각성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43년 말경 임형섭(林亨燮)·고주호(高周浩)·회산기영(檜山琪榮)·좌등용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항일결사 조국위안회(祖國慰安會)를 결성하였다. 태평양전쟁을 독립 달성의 기회로 보고, 중국·소련 등지에서의 해외독립운동과 호응할 것을 결의하고 일제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일제히 봉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조국 재건에 있어서 청년들의 역할과 일치단결의 자세를 특히 강조하였다. 이러한 목표 아래 숙소 등지에서 모임을 가지며 민족의식을 기르는 한편 동지간 유대 강화와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이렇게 독립사상 고취 활동을 하던 중 1944년 5월 24일 조직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붙잡힌 이후 나고야(名古屋)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45년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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