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건
張師健1919. 12. 30 ~ 1951. 7.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항일투쟁(비밀결사 조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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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91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豐基面) 성내동(城內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여 송평정육(松平精育)을 사용하였다. 1933년 3월 경성에서 교동공립보통학교(校洞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경성제1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여 1938년 3월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에 있는 주오대학(中央大學) 제1예과 2학년에 편입하였다. 1940년 3월 예과를 수료하고, 그해 4월 법학부(法學部)에 진학하였다.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부터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도쿄 주오대학에 진학하자 “조선이 비참한 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주오대학 재학 중이던 1940년 6월 하순경 구호림(具浩林)·고담룡(高湛龍)·김운봉(金雲鳳) 등과 회합하여 독립운동의 방법으로 한민족의 단결심 양성, 자력심 함양, 미국을 통한 독립운동 도모 등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문(高文)그룹을 조직하였다. 고문그룹은 표면적으로 학술연구와 상호 친목단체로 위장하였지만,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하면서 동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나아가 독립의 방법으로 간디(Mohandas K. Gandhi)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기본적으로 채택하고 독립을 위한 투쟁을 협의하였다. 1940년 10월 말경 구호림 등과 함께 실력을 양성하며 자력심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할 것과 독립 후 통치체제는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주의를 모방할 것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1940년 11월 구호림 등과 함께 모임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졸업 후 관계(官界), 혹은 재계(財界)로 진출하여 평생 독립을 목표로 헌신할 것을 협의하기도 하였다. 1940년 6월부터 1942년 5월까지 약 11회에 걸쳐 독립의 쟁취 방법을 논의하였다. 1942년 8월경에 체포되어 1년을 넘는 조사 과정을 거쳐 1944년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및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임시취체법(臨時取締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다. 1944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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