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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友生

鄭友生

1913 ~ 1935.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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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友生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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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오사카)
  • · 반제동맹(오사카)
  • · 일본공산청년동맹(오사카)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3년생으로 추정된다. 제주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 등에 참여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3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이하 전협(全協)) 금속오사카지부(金屬大阪支部)에 가입하였으며, 그해 9월 반제동맹(反帝同盟) 오사카지방위원회(大阪地方委員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3월 신성만(申聖萬)·미쓰야(三矢) 등의 권유로 일본공산청년동맹(日本共産靑年同盟)에 가입하였고 일본공산청년동맹 오사카시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후 오사카의 동지구(東地區) 책임을 맡았으며 1933년 6월에는 오사카시위원회의 조직부장이 되어 오사카 지역의 한인들을 규합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회원 50명을 공산청년동맹원으로 포섭할 수 있었다. 반제동맹 등을 통해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3년 7월 13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8월 31일 기소되었다. 검거된 이후 예심으로 옥중에서 생활하였고, 그때 얻은 신병으로 건강이 위중해지자 1935년 8월 초순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교토(京都)에서 요양하던 중 1935년 9월 1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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