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求
春求1878. 10. 29 ~ 1949. 5.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연통제 충청북도 독판부
- · 조선독립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조선독립군사령부 조직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78년 10월 29일 충청북도 공주군(公州郡) 장기면(長岐面) 평기리(坪其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광일(李光一)을 사용했고, 창씨명은 영정춘구(永井春求)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한 연통제 국내 조직 중 충청북도 독판부(督辦府)의 참사(參事)로 활동하였다. 임시정부는 1919년 내무부 산하에 국민 간 기맥을 상통하고 복국(復國) 사업의 완성을 기하며 내외의 활동을 일치시킬 목적으로 국내에 지방행정조직인 연통제를 두었다. 임시정부는 1919년 12월 국내와의 연계를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연통제를 감독부(監督府)에서 독판부로 개정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청주(淸州)에 설치된 충청북도 독판부의 참사로 1921년 활동하였다. 1921년 9월 상순경 서울에서 김희중(金熙中)·황정연(黃正淵)과 함께 국내에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설치할 것을 계획하고 참모장이 되었다. 김희중은 1921년 1월 독립운동을 위해 베이징(北京)에 가서 박용만(朴容萬)·이회영(李會榮) 등을 만나 상의하여 5월 중 조선독립군사령부에 가입하고 경리부장이 되어 국내 각지에 독립단을 조직할 목적으로 국내로 들어왔다. 또한 미국 워싱턴에서 태평양회의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이에 즈음하여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벌여 그 목적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1921년 8월 서울에 온 김희중의 연락을 받고 황정연과 함께 9월 상순경 괴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세 사람은 경성동물원 및 서울 판동의 신장희(申章熙) 집에서 회합하고 국내에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설치하고 각지에 독립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또한 태평양회의 개최에 때를 맞추어 독립운동을 개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괴산에 조선독립군사령부 본부를 두기로 하여, 우선 고향으로 돌아가 충북의 유력자와 이전 의병 등을 규합하여 독립단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고향에 돌아와 독립단 조직을 위한 활동을 하던 중 태평양회의를 명분 삼아 음모를 꾸미려고 염탐하던 경기도경찰부에 이러한 계획이 발각되어 그해 9월 12일 체포되었다. 1921년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김희중·황정연과 함께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징역 1년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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