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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澈璉

李澈

19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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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澈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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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신흥(新興)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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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1928년 함흥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가평면(加平面) 능리(陵里) 출신이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28년에 나이가 19세로 기록되어 있어, 1910년생으로 추정된다. 1927년 함흥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고초를 겪었다. 1927년 함흥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다니다가, 7월 상순경 학교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반발해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주도하였다. 동맹휴학의 요구 조건으로 ‘학교를 식민지 정치의 일 기관으로 삼고 있는 것에서 해방하여 자유로운 학문 선도의 장소로 만들 것’, ‘자격이 없는 자는 본교에서 조속히 추방할 것’ 등을 내세우며, 2~4학년생 전원의 동맹휴학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약속을 받고 다시 등교하였다. 1928년 3월 학교에서 작년에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김관현(金觀鉉)·주영하(朱寧河)·김상렬(金相烈)·이흥기(李興基)·김정구(金鼎九)·김순덕(金順德)·김영일(金榮溢)·최규집(崔奎集) 등과 함께 재차 동맹휴학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1일부터 2~4학년생 274명과 함께 자격 없는 교사의 퇴직, 작년도 맹휴사건 희생자의 복교 등의 요구 사항을 학교 당국과 함경남도 학무과에 제출하였다. 이어서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일제히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등교에 응하지 않는 학생은 퇴학시킨다”라는 학교 당국의 통지서에도 동맹휴학을 이어갔다. 그리고 타협안을 제시한 학부형 모임에서는 불신임안을 제출함과 동시에 일반 학부형에게는 악독한 민족적 감정의 지배를 받는 교육가는 학도들의 진보와 향상은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자기의 생활 보전을 위하는 급비(給費)에만 연연한다. 이러한 교육가의 지도하에서는 우리 조선의 요구하는 일군을 지을 수 없으며 오직 소위 고등실업가의 양성에 불과하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송부하여 동맹휴학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또한 혈서(血書)로 학생들을 독려하는 한편 동맹휴학의 기밀을 학교에 누설한 동급생 신택현(申澤鉉)에게 주의를 주었고, 맹휴에 불참한 4학년생 김호경(金浩璟), 2학년생 김교선(金敎善)을 동맹에 참여하도록 계도하였다. 이 일로 1928년 7월 12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8월 1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과 상해죄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11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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