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현
張南鉉1911. 2. 28 ~ 1947. 9.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911년 2월 28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쌍암면(雙岩面) 서평리(西平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부산제2상업학교(釜山第二商業學校)에 다니면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교를 주도하였다. 1929년 12월 21일 부산제2상업학교 4학년 재학 중, 당시 광주(光州)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에 호응하고자 같은 학교 3년생인 임기홍(林基弘)·문길환(文吉煥) 등과 함께 동래군(東萊郡) 서면(西面) 범전리(凡田里)에 소재한 강정갑(姜丁甲)의 하숙집에 모였다. 이 모임에서 광주학생운동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 있는 학생들이 항일투쟁 방법으로 동맹휴교를 단행하고 한국의 독립을 주장한다고 하면서, 부산제2상업학교 학생들도 여기에 호응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1930년 1월 7~8일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멸망시키라. 조선총독부 정치에 절대 반대하라”라고 적힌 문건을 작성한 후, 문길환·임기홍 등과 함께 부산 곳곳의 길가에 뿌리며 항일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이어서 1월 8일에는 「피압박민족 대중에 격함」, 「대한동포여 들으라」 라는 격문을 작성하고, 박영포(朴永袍)로 하여금 부산 지역 각 학교로 배포하게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다. 1930년 1월 10일에는 조선일보 김천(金泉)지국장이자 신간회(新幹會) 지부 간부인 임종업(林鍾業)과 부산합동노동조합(釜山合同勞動組合) 조합원이자 신간회 부산지부 간부인 김시엽(金時燁) 등과 함께 범일정(凡一町)에 위치한 조선방직주식회사(朝鮮紡織株式會社) 노동자들과 함께 동맹파업을 주도하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민족적 차별을 받고 있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여건 개선과 독립을 위해서였다. 같은 해 1월 12일 노동조건의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시엽의 집에서 임종업 등과 함께 다시 모였다. 여기서 「우리들은 일어섰다」라는 제목 하에 “일본제국주의에 반항하고 그 식민지 착취 정책에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튿날인 1월 13일 부산의 각 지역과 단체에 배포하였다. 1930년 1월 19일에는 부산제2상업학교 동맹휴교를 주도하다가 퇴학당한 윤달선(尹達先)·문길환 등과 함께 국평현(鞠平鉉)의 집에 모였다. 여기서 붉은 잉크로 ‘대한독립 만세, 타도 일본제국주의, 반대 조선총독부 정치’라고 쓴 현수막 150장을 작성하였고, 1월 21일 밤 현수막을 부산 각지에 설치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0년 7월 1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독립운동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며 항소하였지만, 그해 8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