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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太伊

太伊

189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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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太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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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장기(長鬐)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장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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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장헌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경상북도 장기군(長鬐郡) 내남면(內南面) 내곡동(內谷洞, 현 경주시 양북면)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장헌문(蔣憲文)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4년 2월 일제는 러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대한제국에 군대를 파견하여 서울을 점령한 뒤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였다. 이어서 8월에는 한일협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5년 8월에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이 러일전쟁 이후 국권상실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는 의병이 봉기하여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활동에 돌입하였다. 1895년에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켰었던 장헌문 의병장은 김재호(金載浩)·김복선(金福善)·김종호(金宗號) 등과 함께 사람들을 모아 경상북도 장기군에서 봉기하였다. 이 무렵 장헌문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장헌문 의병부대 소속으로 정만춘(鄭萬春)·최봉학(崔鳳鶴)·이무범(李武範)·최용이(崔用伊)·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군수품과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1908년 (음)2~4월 경상북도 경주(慶州)·장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군경의 추적을 받아 붙잡혔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 살인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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