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承
漢承미상 ~ 1907. 8. 1
포상 정보
- · 애국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7)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없다. 1902년 7월 6일 대한제국 육군 참위(參尉)로 임명되었다. 1906년 10월 23일 진위대 1대대에 소속되었다가, 1907년 3월 18일 시위보병 제2연대 제1대대로 전보되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행정권과 인사권을 박탈하였다. 이어서 일제는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같은 해 8월 1일 서울의 시위대에 해산명령이 내려지자 제1연대 제1대대 대대장 참령(參領) 박승환(朴昇煥)은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애석함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시위대 제1연대 1대대와 제2연대 1대대의 군인들은 무기고에 있던 무기를 접수하고 군대해산에 저항하며 전투에 돌입하였다. 이때 제2연대 1대대 참위로 전투에 참여하였다. 시위대 2개 대대의 군인들이 봉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일제는 일본군 보병 제51연대 제3대대 제9중대와 제10중대에서 각각 1개 소대 병력을 보내서 이들을 막도록 하였다. 오전 9시 30분 교전이 시작된 후 시위대 병사들은 일본군을 압도하면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하지만 일본군 제10중대 병력 전체가 전투에 투입되면서 병력과 화력에서 밀리게 되었고, 전황은 시위대에게 점차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오전 10시 50분 제2연대 1대대 병영, 오전 11시 40분 제1연대 병영이 각각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전사자 4명과 부상자 38명이 발생하였다. 반면 시위대는 장교 13명과 병졸 56명 등 총 79명의 전사자와 90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560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시위보병 제2연대 제1대대 중대장 정위(正尉) 오의선(吳儀善)·권중협(權重協), 참위 장세정(張世禎)·노덕세(盧德世)·이준영(李峻永)·이규병(李圭丙), 견습참위(見習參尉) 이긍주(李肯周)·이충순(李忠純)·백보용(白普鏞)·남상덕(南相悳), 특무정교(特務正校) 김순석(金順錫)·고희순(高喜淳)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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