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浩相
浩相1890. 11. 7 ~ 1975. 1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해남군 해남면(4.11)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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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90년 11월 7일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삼산면(三山面)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직업은 농업이며, 나이는 30세였다. 이명으로 이경태(李京泰)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1일 해남군 해남면 해남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해남면(海南面) 대화정(大和町)에 거주하던 김동훈(金東勳)이 주도한 것이었다. 김동훈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해남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4월 초부터 동지를 규합하였고,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 목판을 제작하여 태극기 800여 장을 인쇄하였다. 또한 읍내 유지인 김경두(金璟斗) 등과 당목으로 대형 태극기 6장을 제작하였다. 4월 6일에 이미 만세시위를 일으키고 해산한 해남보통학교 학생과도 연대하기로 하였다. 만세시위는 해남 장날인 4월 11일로 정하였다. 만세시위 당일, 정오 무렵에 김동훈이 주도하는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김흥룡(金興龍)이 당목으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앞장서자, 시위대를 따라 만세를 외치며 크게 호응하였다. 손승옥(孫升玉)이 해남보통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학생들이 대거 교문 밖으로 뛰어나왔고 시위대에 가세하였다. 하지만, 급거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김동훈 등 주도 인사가 붙잡혔고, 1,000여 명에 이르렀던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오후 4시, 시위를 끝내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때마침 같은 마을에 사는 선화인(宣化仁)과 안장길(安長吉), 창리(昌里)에 사는 이양근(李良根),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서산리(瑞山里) 출신인 김상철(金相喆)을 만나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였다. 그리고 해남면 홍교(虹橋) 부근에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를 기회로 여겨,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쳤고, 군중을 이끌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6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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