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柱宅
柱1883. 2. 19 ~ 1945. 1.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파주군 적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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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3년 2월 19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적성면(績城面) 장파리(長坡里, 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같은 마을의 한은동(韓殷東)과 함께 1919년 3월 31일 적성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를 중심으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이 발표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한은동과 의기투합하여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3월 31일로 결정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한은동과 협의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할 주민들의 규합에 대해서는 한은동이 담당하고, 현장에서 만세시위의 지휘를 담당하기로 결정하였다. 한은동은 3월 29일 밤, 마을 구장이었던 유병성(柳秉性)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협력을 받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한은동은 유병성이 부재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으나, 그곳에 있던 유병성의 동생인 유병익(柳秉翼)·우춘삼(禹春三)·이교화(李敎化)·유중근(柳仲根) 등의 여러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서울에서 시작된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을 알리면서 “인근의 다른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우리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이 어떠하냐”고 제의하였다. 한은동의 제안에 유병익·우춘삼 등 주민들은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만세운동의 거사일인 3월 31일 오후 늦게 한은동과 함께 유병익·우춘삼·이교화·유중근 등 20여 명의 주민을 규합하여 거주지인 파평산으로 올라갔다. 이들을 지휘하여 모닥불을 피워 횃불을 밝히고,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한은동·유병익을 비롯한 20여 명의 주민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만세시위를 이어나갔다. 이후 직접적인 일제 측 자료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은동의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적성면의 만세시위 주도자임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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