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海東
海東1899. 6. 9 ~ 1979. 3. 12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영덕 영해
- · 병곡면(3.18~1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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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9년 6월 9일에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柄谷面) 신평동(新坪洞)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직업은 농업이었다. 영해(寧海)·병곡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영덕으로도 퍼져나갔다. 영덕지역에서 만세시위는 북장로교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서울에서 돌아오면서 시작하였다. 김세영은 3월 12일 같은 기독교인인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과 만나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과 파리강화회의 등 세계정세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영덕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영해지역에서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서 병천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교회의 조사 정규하(丁奎河)와 권태원이 회합하였다. 김세영은 김혁동(金赫東)을 영덕의 강우근(姜佑根), 김우일(金愚一)에게 보냈으며, 김중명(金重命)을 지품면(知品面)의 김태을(金太乙)과 황장동의 주명우(朱明宇)에게 보내서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권태원은 일가인 권(權)가를 접촉하였고, 권상호, 남효직(南孝直) 등을 만나 유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3월 18일 정오 경 영해의 성내(城內)시장에 정규하·남효직 등이 태극기를 안고 진입하였다. 오후 1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가 시작되었다. 2,000~3,000명에 달하는 군중이 이에 열렬히 호응하였다. 2시 경에 정규하는 군중 일부의 시위대를 지휘해 병곡면(柄谷面)으로 나아갔다. 시위대는 병곡주재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으며 이 과정서 병곡주재소, 면사무소 등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당시 3월 18일 오후 5시경 병곡면 영동의 도로에서 시위 군중과 만났는데, 시위대 중 괴시동에 사는 권씨에게 시위 참여를 권유받고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만세를 부르면서 병곡주재소와 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시위를 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및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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