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行錄
行錄1902. 3. 28 ~ 1962.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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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2년 3월 28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대동면(大同面) 용성리(龍城里)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3월 26일 함평 시장에서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평에서는 1919년 4월 26일에 벌이기로 한 만세운동 계획이 거사 직전 좌절된 적이 있다. 당시 주도 인사였던 조사현(曺士鉉)·정기연(鄭琦衍) 등은 3·1운동 1주기를 맞아 다시금 만세 시위를 기획하기 시작하였다. 3월 19일 조사현은 함평고등공립보통학교 기숙사를 찾아 여러 동지들과 함께 거사 날짜와 계획을 상의하였다. 우선 졸업식과 장날이 열려 많은 인파가 모일 수 있는 3월 26일에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다음으로 윤치영(尹致榮)·김준령(金俊玲)·모순기(牟順基)·정영조(鄭榮祚) 등에게 하여금 함평면(咸平面), 대동면을 비롯한 각 면에 연락을 취하게 했다. 동시에 21일은 최봉길(崔奉吉)의 집에서, 22일은 기숙사에서, 23일은 모순기의 집에서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26일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나자 오후 4시경에 장터로 나아가 청년과 주민 수백 명과 합세하였다. 곧 함평 장터에서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조사현 등의 주도층을 비롯해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시위의 열기를 더했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서둘러 현장에 출동하여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열은 흐트러졌다. 강경한 진압 끝에 10여 명이 다치고 20여 명이 연행되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9시 기산(箕山) 산 위에서 화톳불을 놓고 만세운동이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4월 1일부터 4월 5일까지 군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나는 등 만세운동의 여파가 이어졌다. 붙잡힌 후 1920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혐의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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