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亨祺

亨祺

1895. 4. 25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亨祺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개성(開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개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5년 4월 25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남본정(南本町)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금물상(金物商)이다. 1919년 3월 26일 개성군 송도면 철시(撤市) 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초순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거세지자 자신의 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그 기운을 더욱 고조시키고자 하였다. 3월 26일 개성군 영남면(嶺南面) 용흥리(龍興里)에 있는 자신의 거택(居宅)에서 최두순(崔斗淳)·김형렬(金亨烈)·김세중(金世重) 등과 회합하여 독립운동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철시 운동을 통해 일제통치에 타격을 주는 방법을 채택했고, 이를 위해 개성 시내에 상인들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우선 「개성시민에 대한 분발사항」이라는 제목으로 “폐점은 민심 동요의 기본이니 개성 상민은 본 문서 도착과 동시에 폐점하라, 만약 응하지 않으면 화액(禍厄)을 당할 것이다”라는 취지의 권고문을 6통 작성하였다. 위 권고문은 26일 밤 동안 개성 남대문 부근의 거상(巨商)인 손계호(孫啓鎬)·이희세(李熙世)·김규용(金圭鏞)·김광한(金光漢)·이창구(李昌求)·이형익(李亨益) 등 6인의 점포에 1통씩 연속 배포되었다. 다음날인 3월 27일 위 6인의 거상을 필두로 철시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다수의 조선인 상점이 일제히 철시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인 상점의 경우 이에 동의하지 않고 개점하였으나 개성 시민들이 단결하여 일본인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않자 일본인 상인들도 어쩔 수 없이 철시하게 되었다. 3월 28일 이후에는 음식점, 정육점, 식료품점 일부를 제외한 모든 상점이 폐점되어 사실상 상거래가 완전히 중지되었다. 이에 개성군수는 이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서장과 협의하여 4월 4일 오후 1시부터 주요 상점의 상인들 40여 명을 소집하였다. 이 자리에서 강제로 상점을 개시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상인들은 4월 5일 아침부터 철시를 중단하고 일제히 개점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개성경찰서는 철시 권고문을 작성·배포하였던 인물들을 철저히 수사하기 시작하였고, 4월 7일 결국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항소하여 1919년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고등법원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28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만기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