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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항

田炳恒

1891. 2. 14 ~ 196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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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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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蔚珍)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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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울진군 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1년 2월 14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북면(北面) 고목리(古木里)에서 전오상(田五相)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우락(雨若)이고, 호는 청석(靑石)이다. 일찍이 학문을 좋아하여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富邱里) 흥부(興富)장터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선언에 대한 소식은 대체로 두 가지 경로로 울진지역에 전달되었다. 일찍이 매화리(梅花里)에 설립된 만흥학교(晩興學校)를 졸업하고 1919년 2월 경신학교(儆新學校)에서 수학하고 있던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출신 장식(張植)이 원남면 매화리의 윤병관(尹炳寬)에게 전달한 독립선언서와, 서울 중앙감리교회 전도사로 있던 홍규익이 외손자인 북면 고목리의 지장감리교회(智藏監理敎會) 전도사 전병겸(田炳謙)에게 보낸 공약 3장과 교회가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주동해야 한다는 전단지를 통해서 그 소식이 전해졌다. 이리하여 친구간이었던 윤병관과 전병겸이 울진지역 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윤병관은 매화리 사람들을 규합하였고, 전병겸은 지장감리교회의 교인 및 만흥학교 동창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1일 남병표(南炳豹)와 함께 매화장터 장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이후 4월 13일 부구리의 김일수(金一壽)·김광수(金光壽)·황종석(黃宗錫) 등과 힘께 흥부장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전병겸은 사촌이었으며, 남병표는 지장감리교회의 교인이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지장감리교회에서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교인의 대부분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3일 오후 1시경부터 흥부장터에서 주도자들이 만세를 부르며 장꾼들을 규합하자 일제 헌병은 주동자 4명을 체포하였고, 만세시위도 다소 주춤해졌다. 그럼에도 군중은 밤 8시쯤 다시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였고, 밤 12시경에 이르러 진압에 동원된 헌병과 군중은 육박전까지 벌였다. 4월 14일 흥부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남병표·김광수·김일수·황종석·홍우현(洪禹鉉)·김기영(金琪榮)·김도상(金道尙)·박양래(朴楊來)·김봉석(金鳳錫)·김재수(金在壽)·이상구(李相龜) 등과 함께 모두 12명이 붙잡혔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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