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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환

鄭奎煥

1894. 8. 10 ~ 196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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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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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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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수원군 성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3) 1894년 8월 10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성호면(城湖面, 현 오산시) 오산리(烏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미곡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때마침 세교리(細橋里) 출신 유진홍(兪鎭弘)이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서울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내려와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이에 가담하여 안낙순(安樂順)·이성구(李成九)·이규선(李圭璇)·김경도(金敬道)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각자가 비밀리에 각 마을에 연락을 취한 후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 준비하였다. 거사일은 오산 장날인 3월 29일로 결정하였다. 3월 29일 오후 5시경 오산장터 우시장(현 싸전시장)에 약 300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때 유진홍과 안낙순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자전거를 타고 시장 주변을 누비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어 노동화로 바꿔 신고 머리에 수건을 둘러매고 동지들과 함께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었다. 시위 군중은 시장을 출발하여 성호면사무소와 오산경찰관주재소를 거쳐 오산역으로 행진하였다. 시위행진 중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관공서를 파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지 일제 경찰은 긴급히 출동하여 해산을 요구하였다. 시위대는 이에 불응하며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순사 오키(大木喜市)가 시위를 주도하던 유진홍·안낙순 등을 붙잡아 주재소에 가두었다. 동지들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구속자의 석방을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은 어쩔 수 없이 해산을 조건으로 구속자들을 석방하였다. 오후 7시경 구속된 이들이 석방되자 더욱 기세가 오른 시위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면장 유진열(劉鎭烈)이 만세운동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진홍·김경도와 함께 “면장 나오라.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라고 질책하고, “면장은 어디 있는가. 그를 내 놓으라”라고 요구하였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불응하자 분개하여 돌을 던져 면사무소의 유리창과 창문 등을 파괴하였다. 이 무렵 시위 군중은 약 500명으로 증가하였다. 다시 동지들과 함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가서 돌을 던지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어 오산우편소로 가서 돌을 던져 창문, 기물 등을 파괴하였다. 이때 “전화가 있어서 군대가 응원 오는 것이니 파괴하라”라고 선동하였다. 이에 따라 시위 군중 1명이 우편소 안으로 들어가 전화기 1대를 파괴하였다. 시위 군중은 더욱 증가하여 약 800명에 이르렀다. 이들을 이끌고 일본인 거주지로 이동하였다. 당시 오산 지역은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오산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의 거주지와 상점이 점차 늘어나 한인과 일본인 사이의 반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시위 군중과 함께 일본인 상점과 주택에 투석하여 부수었다. 이어 오산역을 파괴하고자 시위 군중을 이끌고 만세를 고창하며 그곳으로 향하였다. 다급해진 일제는 경찰과 군인을 파견하여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이성구·이규선·김경도 등 주도자들이 붙잡혔는데, 이때는 무사히 탈출하였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 궐석재판(闕席裁判)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궐석재판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여, 1921년 11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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