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薰植
趙薰植1864. 10. 1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포천군 신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64년 10월 10일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신북면(新北面) 만세교리(萬世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영근면(嶺近面) 은대리(隱垈里)에서 서당교사를 하였다. 같은 해 3월 30일 포천군(抱川郡) 신북면(新北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계식(趙啓植)·조종연(趙鍾淵) 등과 함께 손병희(孫秉熙) 등이 발표한 독립선언에 찬성하고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3월 29일 포천군 소흘면(蘇屹面) 무봉리(茂峰里)와 군내면(郡內面) 유교리(柳橋里)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대규모 연합만세시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당일 조계식의 집에서 조종연의 발의로 “이튿날 30일 아침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칠 터이니 주민들을 선동하여 이에 참가시켜라. 만약 불응하면 집에 불을 놓고 기타 위험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라는 내용의 취지서 10여 통을 조종연과 함께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 취지서 가운데 2통을 포천군 영중면(永中面) 양문리(梁文里)와 거사리(居士里)의 구장에게 보내고, 최학돌(崔學乭)에게 부탁해 삼성당리(三星堂里) 구장(區長)인 서상련(徐相蓮)과 양인혁(楊麟赫) 등 인근 마을 구장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어제 취지서를 배부받은 구장 등을 통해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모인 포천군 신북면·이동면·일동면·영중면 주민 1,000~2,000여 명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시위대 500여 명이 인근에 위치한 포천군청으로 이동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듣고 출동한 포천헌병분견소 소속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투석을 하며 저항하였다. 그러다가 조계식·최학돌 등과 더불어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9월 10일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