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濬承
濬承1919. 2. 24 ~ 1990. 1.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9년 2월 24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松梅面) 하도리(下道里)에서 태어났다. 1933년 강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京城府)의 삼천리촬영학교에서 사진술을 배웠다. 이후 만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형들의 주선으로 중국으로 유학하여 1939년 베이징(北京)의 북방고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 명부 기록에 따르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어 통역과 신문업(新聞業)에 종사한 경험이 있으며, 촬영이 특기였다. 베이징에서 유학하던 중인 1938년 2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서곤(徐崑)과 접선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중국 관내 정보를 수집하여 전달하였으며, 베이징 내 한인 학생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1939년 10월 후베이성(湖北省)에서 임시정부 특파원 백정현(白正鉉)·김천성(金千成)과 접선하여 수집한 정보를 전달하였다. 정식 공작대원으로 임명되어 베이징과 톈진(天津)·스자좡(石家庄) 일대에서 동지 초모(招募) 활동을 통해 관내의 뜻있는 한인들을 일본군 점령지역 밖으로 탈출시켜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하였다. 지하 공작 활동이 일제 헌병대와 영사관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감시 대상이 되자 베이징을 탈출하여 1942년 7월 20일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소재 광복군 제2지대에 정식 입대하였다.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제2분대원으로 활동하며 일본군을 대상으로 심리전·선전전을 전개하였다. 후베이성·산시성(山西省)의 일본군 점령지 내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초모하였다. 1944년에는 시안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서 정훈과원으로 활동하며, 광복군의 월간 잡지 『전우(戰友)』발간 사무에 종사하였다. 1945년 4월 3일 임시정부의 김구(金九) 주석과 미국 전략첩보기구(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의 클라이드 사전트(Clyde B. Sargent) 대위가 한반도 탈환에 앞서 한인 요원을 국내에 잠입시킨다는 한미공동작전 계획의 독수리 작전(the Eagle Project)의 실행을 추진하자 광복군 제2지대 대원들과 함께 시안의 제2지대 본부에 집결하여 요원 양성을 위한 훈련에 참가하였다. 이때 시안 근교 투추(杜曲)의 훈련소에서 약 3개월간 잠입 및 사보타주를 위한 유격·폭파훈련과 암호통신 교육을 이수하고 독수리 요원에 최종 선발되어 무전반에 소속되었다. 1945년 8월 이명(李明)·박수덕(朴樹德)과 함께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경기도반 제1조에 배속되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광복군 신분으로 중국에 체류하며 국민혁명군을 도와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과 관할 내 치안 유지, 한인 교포들의 신변 보호,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다가 1946년 6월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 인솔하에 제2지대원들과 함께 상하이(上海)를 경유하여 국내로 귀환하였다. 귀국 이후 서울에 정착하였으며, 인천의 계림화학연구소(鷄林化學硏究所)에서 근무하다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국군 헌병사령부 제11대대의 군무원으로 복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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