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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赫魯

赫

1889 ~ 193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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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赫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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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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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구국단
  • · 고려공산당
  • · 조선공산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서울 북미창(北米倉, 현 중구 북창동)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이성(李聖)이며, 서울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구국단(救國團)의 단원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구국단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경기도에서 정인호(鄭寅琥)가 주동이 되어 장두철(張斗徹) 등 20명과 함께 조직한 단체로, 임시정부 요인들과 연계하여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上海)로 송부할 것을 결의하고 각종 문서를 인쇄하였으며 거액의 군자금을 상하이로 송금하였다. 이러한 구국단 활동으로 1921년 4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2년 1월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 결성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에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기관지인 『신생활(新生活)』 잡지사에서 주필로서 근무하였다. 그해 『신생활』에서 러시아의 10월 혁명 5주년 기념호를 발간하면서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관련된 기사를 실었다가 관련자들이 구속된 이른바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일제 경찰의 구속 열풍을 피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하였다. 1923년 8월 29일에 국치일을 맞아 고려공산당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망국기념대회를 대대적으로 거행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조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자 하였다. 이때 이동휘(李東輝) 등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대회에 참석하였다. 1924년 12월 7일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동맹(社會主義者同盟) 창립총회에 참석하였다. 사회주의자동맹은 이영(李英)·정백(鄭栢)·한신교(韓愼敎)·최창익(崔昌益) 등 50여 명의 발기로 결성되었는데, 이때 참여하여 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사회주의자동맹의 강령은 농민단체와 노동단체를 결합하여 노동자의 권익향상과 노동계급사회라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다. 폐병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진회(前進會)와 노동당(勞動黨), 서울청년회(靑年會)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28년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과 관련해서 일시적으로 해외로 망명하였다가, 1929년 봄 비밀리에 입국하였다. 1930년 3월 6일 폐병이 악화되어 거동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 경찰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는 중에도 일제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1930년 3월 22일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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