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맹일
鄭孟逸1897. 9. 19 ~ 1956. 12.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불교유신회
- · 조선불교청년동맹
- · 조선불교청년총동맹
- · 만당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명고축출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7년 9월 19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광도면(光道面) 안정리(安靜里)에서 태어났다. 안정리 벽발산(碧鉢山)에 위치한 안정사(安靜寺) 주지로서 1920년에 만들어진 불교 혁신 운동 단체인 조선불교유신회(朝鮮佛敎維新會)에 참여하였다. 1922년 3월 26일 조선불교유신회 총회 참석차 서울로 올라왔다가 100여 명의 승려·신도들과 함께 친일 행각으로 비판을 받던 수원 용주사(龍珠寺) 주지인 강대련(姜大蓮)의 서울 사무소로 몰려갔다. 이후 강대련에게 북을 지게 한 다음, 거리로 내몰아 이른바 ‘명고축출(鳴鼓逐出)’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종로경찰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2년 5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대련을 불법으로 체포하고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며, 1922년 8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1927년 결성된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靑年同盟)에 참여하여 불교 청년 운동을 지속하였다. 1930년 5월 무렵 불교청년운동의 부진을 극복하고 불교 혁신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자 조학유(曺學乳)·김상호(金尙昊)·김법린(金法麟)·이용조(李龍祚) 등이 주도하여 만든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만당은 ‘정교분립(政敎分立), 교정확립(敎政確立), 불교대중화’를 강령으로 내걸었고 80여 명이 참여하였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선언과 강령조차 문서로 남기지 않고 암송으로 전하였다. 1931년 3월 만당 조직에 의해 조선불교청년동맹이 조선불교청년총동맹(朝鮮佛敎靑年總同盟)으로 개편될 때 참여하였다. 이후 내분에 시달리던 만당은 1933년 당원들이 모여 해체를 선언하였다. 1938년 말 진주경찰서에 만당 조직이 발각되어 김법린을 비롯한 관련자들과 함께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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