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應鳳
鄭應鳳1895. 5. 15 ~ 1947. 9.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상점
- · 신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대동상점 군자금 모금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1895년 5월 15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豊基面) 서부리(西部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의극(鄭義極),정건중(鄭健中)이다.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으며,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5년 대동상점(大同商店)을 운영하여 만주 독립군 양성에 필요한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전개하였다. 대동상점은 1915년 8월 3일 국권회복을 위해 박제선(朴齊璿)·권영목(權寧睦) 등이 도모하여 경북 영주군 영주시장 내에 개점한 잡화점이다. 대동상점은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비밀회의 장소로 제공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만간 만주로의 이주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유명수(柳明秀)·이교덕(李敎悳) 등과 함께 이 계획에 찬동하고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였다. 1916년 3월 이후 권상수(權相洙)·송계찬(宋桂燦) 등과 함께 독립군 양성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부호들로부터 여러 차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8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그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였다. 그해 8월 1일 경북 봉화군(奉化郡) 봉성면(鳳城面) 봉성리(鳳城里)에 사는 부호 박규영(朴奎永)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19년 9월 매부 신철균(申喆均)이 사는 경북 문경군(聞慶郡) 농암면(籠岩面) 율수리(栗藪里)에서 부호들에게 “뜻을 강하게 하여 시기의 도래를 기다려야 한다”라는 문건을 작성하여 각 면사무소 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배포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1월 2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2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3월 25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민천공사(民天公司) 사무원으로 일하였으며, 1925년 봄 귀국하였다. 1927년 12월 14일 신간회 경성지회 제1차 간사회에서 조직부 상무간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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