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化日
化日1882. 12 ~ 1945. 1.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77)
관련 사건
- · 봉오동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77) 1882년 12월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어랑면(漁郞面) 하남리(河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동환(李東煥)이다. 1920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의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북간도를 근거지로 한 독립군단들인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국민회군(國民會軍)·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등이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조직하였다. 홍범도(洪範圖)·안무(安武)·최진동(崔振東) 등이 이끈 이 세 군단은 연합 군단을 만들기 이전부터 각각 수백 명의 독립군을 보유하고 많은 항일무장전을 수행해 침략자 일제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능력 있는 군단들이 보다 효율적인 항일전을 전개하기 위해 연합한 것이었다. 대한북로독군부의 최고 지휘관인 부장(府長)은 최진동이, 부관은 안무가 맡았으며, 이 최고지휘부 밑에 군사 업무를 전담할 사령부를 편성해 홍범도가 사령관에 선임되었다. 사령부 내에는 군사·군무·회계·검사·통신·치중(輜重)·피복 등의 군사행정 부서를 두고, 1중대부터 4중대까지 4개 중대를 편성하였다. 이 같은 편제의 사령부에서 제2중대 3소대 1분대 분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연합군단의 병력은 정확한 수를 산출하기는 어려우나 약 700~900명이었으며, 주력 부대는 왕칭현(汪淸縣)에 있는 봉오동(鳳梧洞)에 주둔하였다. 대한북로독군부의 병력 중 일부가 유격대를 구성해 1920년 6월 4일 새벽 5시 두만강을 넘어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강양동(江陽洞)으로 진입하였다. 유격대는 일본군 헌병군조 후쿠에 산타로(福江三太郞)가 지휘하는 헌병순찰소대를 격파하고 다시 도강해 간도로 왔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일제의 국경수비대인 남양(南陽)수비대는 수비대장 니이미 지로(新美二郞) 중위가 일본군 1개 중대에 헌병과 순사 10여 명을 추가해 이들을 이끌고 강을 넘어 독립군을 추격해 왔다. 그러나 일본군의 추격을 알게 된 독립군은 대결을 피하지 않고 화룽현(和龍縣) 월신강(月新江) 삼둔자(三屯子) 서남방에 매복해 있다가, 같은 달 6일 오후 10시경 능숙한 작전을 구사해 섬멸하였다. 한국의 강양동과 북간도의 삼둔자, 두 곳에서 참패한 소식을 보고받은 일제의 조선군 제19사단 본부에서는 크게 분노하였다. 따라서 보고를 받자마자 400명이 넘는 병력으로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조직해 독립군의 근거지가 있는 북간도 깊숙이 침입하도록 명하였다. 월강대의 지휘관은 일본군 육군소좌 야스카와(安川)였다. 일본군이 대규모 추격대를 구성해 침입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첩보원을 통해 보고 받은 대한북로독군부의 지휘부는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지형의 봉오동을 십분 활용해 적을 전멸시킬 작전을 계획하였다. 이천오(李天五)가 이끄는 제1중대는 봉오골 윗마을 서북단에, 강상모(姜尙模)가 이끄는 제2중대는 동쪽 산 능선 밑에, 강시범(姜時範)의 제3중대는 북쪽 산 중간지점에, 조권식(曺權植)의 제4중대는 서산 남단에 매복시켰다. 군무국장 이원(李園)에게도 본부 병력과 일부병력을 합해 서북쪽의 산림이 울창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탄약과 식료를 공급토록 하였다. 그리고 사령관 홍범도는 일부 병력을 이끌고 서산 북단에 매복하고, 독군부장 최진동과 부관 안무는 골짜기의 최고 높은 지역인 동북지역의 서쪽계곡에 위치해 작전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전군이 이 같이 배치되고 난 이때 사령관 홍범도로부터 가장 중요한 특수 임무를 부여받았다. 1분대의 분대원 전원을 지휘해, 한국의 남양에서 두만강을 넘어 봉오동으로 오는 길목인 고려령(高麗嶺) 북쪽 1200m 고지와 그 부근에 매복해 있다가 일본군이 나타나면 교전하는 척 공격을 한 뒤 반응이 있으면 곧 본대가 매복해 있는 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침입해오는 일본군을 유인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1920년 6월 7일 오전 6시 30분경 일본군 전위부대가 시야에 나타났다. 이에 분대원들에게 사격을 명령해 그들의 시선을 끌도록 하였다. 일본군들이 달려들면 쫓기는 듯 본대가 있는 곳으로 향해 유인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본군을 유인하고자 한 공격이 상당한 수의 적을 사살하고 말아 겁을 먹은 전위부대가 퇴각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큰 손실을 당한 야스카와는 대오를 다시 정리해 크게 주의하며 부대를 전진시켰다. 이들을 향해 다시 총격을 가한 후 일본군이 반격하자, 이번에는 쫓기 듯 분대원들을 이끌고 봉오동으로 향해 결국에는 포위망 깊숙이 끌어들였다. 일본군의 주력 부대가 공격하기 가장 적당한 지점에 들어오자 사령관 홍범도의 명령이 떨어졌고, 북로독군부 전원이 일시에 총격을 가하였다. 독립군의 공격에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반격해 왔지만, 이미 승패는 가려졌다. 이 대첩에서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1924년 후반에는 소련 연해주를 무대로 활동한 한인공산청년회 소속 올가 황청(黃淸) 지방의 대표가 되었으며, 휘하에 32명의 회원이 있었다. 곧이어 1925년 3월경에는 다시 북간도로 돌아와, 옌지현(延吉縣)에 근거지를 둔 원종교(元宗敎)의 지방법회(地方法會) 회감(會監)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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