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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熙三

熙三

185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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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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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熙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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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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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 · 대한국민단
  • · 적기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5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이희삼(李希三)·(李凞三)·(李喜三)·이은경(李殷卿)·이은향(李殷鄕)·이기호(李基鎬)·이희왕(李熙王)이다. 1911년 남만주(南滿洲) 창바이현(長白縣)으로 이주하였다. 예수교 장로로서 조덕수(趙德脩)·오주섭(吳周燮) 등과 함께 장백현교회(長白縣敎會)를 설립하였다. 1919년 창바이현에서 이동백(李東白)·김찬(金燦)·윤병용(尹秉庸)·강연상(姜鍊相)·김종기(金宗基)·김기우(金基禹)와 함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선임되었다. 군비단은 “민주공화국의 신기원을 건설하기 위해” 민족적 저항과 이를 조직적으로 전개한다고 천명하며 항일무장투쟁 단체로 조직되었다. 설립 당시 단원은 약 300명 정도의 규모였다. 1919년 9월 30일 푸쑹현(撫松縣) 군비단 본부에서 최용억(崔龍繶)을 군비단 충경지방(忠慶地方) 재무소모원(財務召募員)으로 임명하고 국내로 파견하였다. 최용억은 그 해 (음)10월 함남 갑산(甲山)-원산(元山)-서울-조치원(鳥致院)을 거쳐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용산면(龍山面) 미전리(米田里) 최치만(崔致萬)의 집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옥천경찰서(沃川警察署)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전문 17개 조로 된 군비단 「약장(約章)」을 발표하였다. 「약장」에는 군비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인 이동휘(李東輝)의 명령으로 조직되었고 ‘독립군의 군사(軍事)’를 그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었다. 조직 구성은 단장과 부단장, 총리(總理, 총무) 각 1명과 서기부(書記部), 참의부(參議部), 재무부, 외교부, 통신부, 국제부를 두는 것으로 정하였다. 1919년 11월 4일 군비단 제1회 책임자 대회를 개최하고 다음과 같은 방침을 결정하였다. ①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초기에 있는 우리들은 일본 군벌의 침략주의에 최후 일각까지 투쟁하고 군중의 반동심을 고취하는 동시에 유지청년들을 모집하여 훈련시키자. ②중국 관헌들의 동정을 잃지 말고 지방풍기를 안전하게 하며 민중의 산업 향상에 힘쓰자. ③사업발전책에 있어서는 유지, 단체 또는 개인까지도 연락을 취하자. ④군자금 모집에 힘쓰며 무기를 구비하자. ⑤의용군대(義勇軍隊)를 조직하여 파괴사업에 전력하자. ⑥경호대를 늘려 뜻밖의 적환(敵患)을 예방하자. ⑦아동교육을 장려하여 제2세 혁명군을 양성하자. 1919년 11월 19일 군비단에서는 활동 목표와 방향을 설정한 「포고문」을 하부조직인 각 지단(支團)에 보냈다. 포고문 첫 번째 항에는 “영년(永年) 골신(骨身)을 던져 한국의 독립에 분주하고 있는 우리들의 목적을 과(果)하는 시기는 절박하다. 모국에서 악한(惡漢)에게 눈물 흘리고 있는 2천 만 동포도 우리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국무원(國務院)에서 준비가 되면 일제히 활동하라는 하명(下命)이 있을 것이다. 그 하명과 동시에 전단(全團)은 활동을 개시한다”고 명시되었다. 포고문에는 구체적인 무장투쟁 방안도 제시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할 단원을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각 외국에서도 모집한다. ②노령(露領)에 민군(民軍)을, 북간도(北間島) 3개소에 군사부(軍事部)를 조직한다. ③지린성(吉林省)에 군사령부(軍司令部)를, 푸쑹현에 군비총부(軍備總部)를, 류허현(柳河縣)·린장현(臨江縣)·퉁화현(通化縣)에 군정부(軍政部)를 설치한다. 1920년 단원 김세웅(金世雄)에게 무기 조달을 지시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러시아식 군총(軍銃) 약 300정과 폭탄 약 1,000여 개를 확보하였다. 그해 6월 9일에는 임시정부로부터 창바이현 임시거류민단 조직을 위임받았다. 같은 해 군비단 함남통신사무국장 이동백에게 한반도 내 정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지시에 따라 7월 중순 함남 풍산통신지국(豊山通信支局)이, 곧바로 뒤이어 이원통신지국(利原通信支局)이 설치되었다. 또한, 이원청년회에 독립운동자금 후원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1920년 7월 창바이현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한반도로 진입하여 작전을 전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즉 함남 신갈피진(新乫披鎭)으로부터 함북 무산군(茂山郡)에 이르는 강안(江岸)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고, 같은 해 (음)8월 15일 일제히 국내로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해 10월 부호들에게 송부할 독립운동자금을 의연(義捐)하라는 내용의 「군비단경고문」을 작성하였다. 1920년 10월 2일 일제가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고 2만 여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간도를 침공하였다. 10월 초에서 11월 말 사이 일제는 간도 한인 3천 여 명을 학살하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이 시기 독립군 부대들은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면서 무장역량을 보존하기 위해 근거지를 이동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비단에서도 그들의 무장대오를 연해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20년 12월 24일 군비단 제2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일제의 간도 침공으로 인하여 군사 본부를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또한 「약장」을 일부 수정하였고, 1921년 1월 7일 수정된 「약장」을 발표하였다. 제2회 총회 결정으로 1921년 3월 1일 3·1운동 3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한 후 제1차 독립군 파송을 실시하였다. 이후 9차례에 걸쳐 독립군 500명이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1920년 12월 25일 창바이현 16도구(道溝) 덕수(德水) 서곡리(西谷里)에 있는 대진단(大震團) 지부 사무소에서 군비단 군사부장(軍師部長) 김찬, 대진단 지부장 강계동(姜啓東), 대진단 총무 김원(金元), 태극단 총무 이창운(李昌云), 태극단 지단장 김동준(金東俊), 태극단 지부 총무 이종흘(李鍾屹), 흥업단(興業團) 지단장 이태걸(李泰杰), 흥업단 총무 김달수(金達洙), 흥업단 통신검사(通信檢査) 염학모(廉學模), 대한광복단 지부 제1결사대장 백남호(白南虎), 대한광복단 지부 제2결사대장 홍리덕(洪利德)과 함께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각 단체 대표들은 “서로 원조하여 독립의 목적을 달성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1921년 1월 15일 같은 장소에서 위의 각 단체 대표 50여 명과 함께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압록강 연안 각 단체가 밀접하게 연락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전문 10조의 「연합 규약」을 제정하고 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연합회 임시회장에 선임되었다. 연합 규약에서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압록강안 각 지역에 있는 각 단체는 연락을 통일할 것, ③각 단체에서는 매월 15일 통상회(通相會)를 개최하고 연락을 도모할 것, ⑥각 단체에서 신체가 가장 강장(强壯)한 단원으로 암살대를 편성하여 실력 양성에 노력할 것, ⑦각 단체에서는 한반도로 진출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장려할 것. 1921년 5월 독립운동단체들과 한인 주민들을 위협하던 중국인 마적단을 퇴치하기 위해 별동대를 조직하였다. 별동대는 임병극(林秉極)을 대장으로 하고 김병국(金炳國)과 정성태(鄭成泰)를 분대장으로 하여, 대원 총 75명으로 구성되었다. 중국 군대는 마적단과 함께 독립단체를 탄압하고 공격하였다. 이들이 독립단을 공격하는 배후에는 일제의 사주가 있었다. 별동대에서는 마적을 퇴치하고 중국 관헌과 교섭을 진행하면서 순찰대를 조직하여 한인 주민들을 보호하였다. 별동대에서는 한반도 내로 진입하여 독립운동자금과 독립군 대원을 모집하고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1921년 중반까지 군비단 하부조직을 크게 확장하였다. 장백지단 아래는 창바이현 8도구 남강성리(南江城里)에 제1구 지단, 13도구 동흥리(東興里)에 제1구 지단 지부, 17도구 대리치(大利峙)에 제2구 지단, 15도구 여운작리(如雲作里)에 제2구 지단 지부, 18도구 대정정동(大町亭洞) 상리(上里)에 제3구 지단, 18도구 소사동(小寺洞) 중장막리(中莊幕里)에 제3구 지단 지부가 설치되었다. 지단과 지부 밑에는 창바이부와 창바이현의 18도구, 19도구, 20도구 각 마을에 지단 구역을 설정하여 마을단위의 하부조직을 강화하였다. 지단에는 지단장과 지부장을 선임하고 산하에 총무, 재부, 서기, 통신사무원 등을 임명하였다. 지단 구역에는 구역구장(區域區長), 참경장(參警長), 모집원, 통신원, 경호원을 임명하였다. 또한, 16도구 신창동(新昌洞)에 임시정부의 연락체계와 연결된 통신사무국을 설치하였다. 1921년 8월 28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창바이현 16도구 소덕수리(小德水里) 군비단 제3지단장 박기일(朴基日)의 집에서 조병률(李秉律)·김찬·이인윤(李仁潤)·김창일(金昌一)·임병호(林炳浩) 등 단원 150명과 함께 회의를 열고 다음 사항을 결의하였다. ①9월 20일까지 현내(縣內) 각지에서 장정 200명을 모집하여 훈련을 실시할 것. 먼저 들어온 장정과 합하여 총원 500명 규모로 단체를 조직하고 11월 태평양회의 전후에 한반도 내에서 작전을 수행할 것, 이를 여러 외국에 알려 독립을 실현할 것, ②9월 10일 단원 58명을 푸쑹현 군비총단(軍備總團)에 파견하여 무기, 탄약을 운반하도록 하고 지휘관으로서 이범윤(李凡潤)을 임명함, ③중국 관헌에게 우리가 안전하게 목적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리고 향후 중국 관헌에게 반감을 사지 않도록 주의할 것, ④11월 태평양회의가 개최될 때까지 친일조선인, 일제 관헌 명단과 동향을 충분히 조사할 것, ⑤일본안동영사관(日本安東領事館) 출장원과 출장원이 허가하여 출입하는 조선인의 행동을 엄사(嚴査)하여 상세하게 본단(本團)에 통지할 것, ⑥대안(對岸) 일제 관헌의 동향을 사찰하여 본단에 보고할 것, ⑦일제영사관원과 중국 관헌이 교섭한 사항을 조사하여 신속하게 본단에 보고할 것, ⑧한반도 내에 침투한 단원의 상황을 탐지하여 신속하게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조총법(操銃法) 등을 숙달할 것, 특히 총의 정비에 전력을 기울일 것. 1921년 9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대표 구춘선(具春先), 신민단(新民團) 대표 김성배(金聖培), 태극단 대표 임석우(林錫祐) 등과 함께 자유시참변에 대한 성토문을 발표하였다. 9월 16일 군비단 의용대(義勇隊) 제1중대 제3소대 제1분대 분대장 김병묵(金秉黙) 이하 대원 8명을 함남 갑산군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9월 23일 오후 11시경 갑산군 동인면(同仁面) 사정포(舍井浦) 일제 경찰관 주재소에 폭탄 2개를 투척하여 폭파시켰다. 또한 영림창(營林廠)을 소각하고 순사부장을 처단한 후 독립운동자금과 무기, 탄약을 확보하여 9월 30일 오전 4시경 복귀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10월 임시정부에 보고하였다. 1921년 노령 흑하(黑河)에서 군비단, 흥업단, 광복단, 태극단, 군정서(軍政署), 한족회(韓族會) 등 단체 대표들이 모여 개최한 조선독립단연합총회에 군비단장으로서 총무 윤덕보(尹德甫), 재무 이순조(李舜朝), 서기 채홍묵(蔡弘黙)과 함께 참석하였다. 10월 14일 이들은 임시정부의 지휘에 따르기로 결정하고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조직하였다. 대한국민단 조직 당시 부회장에 선임되었고 총무부에서 활동하였다. 1924년 4월 장해(張海)·마용화(馬容化)·장기영(張基永)·이하소(李河蘇)와 함께 적기단(赤旗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적기단은 ①동방연선(東方沿線)으로부터 이분자(異分子), 이주의(異主義) 단체를 구축(驅逐)하고 만주 본부를 교통이 편리한 지점으로 옮길 것, ②한반도 내외에서 선전에 일단의 힘을 기울일 것, ③군사행동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하여 단원을 완전하게 무장시킬 할 것, ④한반도 내 천도교와 제휴를 한층 공고히 할 것 등의 활동 계획을 세우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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