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基松
基松1895. 12. 1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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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5년 12월 15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강(林堈)이다. 만주로 이주한 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1920년 일제가 일으킨 경신참변으로 인해 만주지역의 한인사회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더욱 조직력 있는 통일기구의 설립을 통하여 독립운동의 역량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1922년 8월 23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南滿韓族統一會議)가 개최되어 약 1주일동안의 회의 끝에 대한통의부의 성립을 발표하였다. 통의부의 행정체계는 중앙기구와 지방조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당시 통의부에 가입하여 화전자(樺甸子) 지방 대표로, 한인들의 치안과 민사를 책임졌다. 이후 통의부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해체되면서 북만주에서 설립된 신민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신민부는 1925년 3월 10일 닝안현(寧安縣) 닝안성(寧安城) 내에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크게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나누는데, 중앙조직은 중앙집행위원회, 참의원, 검사원으로 세분화되었다. 설립 초기 임강이라는 이명을 사용하면서, 군사부위원(軍事部委員) 겸 지방조직위원(地方組織委員)으로 지방 조직에 관련된 사항과 군사 업무를 처리하였다. 1925년 8월경 영고탑(寧古塔) 유운초(劉雲樵)의 집에서 별동대(別動隊) 회의를 개최하던 중 중국 관헌이 습격하여 붙잡혀 투옥되었다. 풀려난 이후 1926년 군사부 산하 총사령 소속 별동대에서 별동대장서리직을 맡았다. 신민부는 1927년 12월 25일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군정파와 민정파로 양분화되었다. 당시 보다 적극적인 무장 투쟁을 주장하는 김좌진(金佐鎭) 중심의 군정파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베이징(北京)에 거주하고 있는 이천민(李天民)의 권유로 베이징으로 가서 군사지식을 학습하려 하였으나, 당시 중국 내전으로 인해 가지 못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베이징에서 한국교민회(韓國僑民會)를 조직하여 교포들의 귀국 사무를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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