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承說
張承1889 ~ 1922. 7.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광복군참리부
- · 대한민국 임시정부(연통제)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수진면(水鎭面)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2년 당시 33세로 1889년 생으로 추정된다. 1914년 펑톈성(奉天省) 콴뎬현(寬甸縣) 남구(南區) 창디엔(長甸) 지방으로 이주해 머물다가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운동 후 간도와 노령의 연해주 지방에서는 우후죽순격으로 많은 독립군 단체들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 8월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이 국내진입작전을 벌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많은 독립군이 앞을 다투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국경지대의 일본군수비대와 경찰주재소 등을 비롯한 일제의 통치기구를 습격, 파괴하였다. 축소된 일본군 측의 자료를 보더라도 1920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동안 독립군부대들이 벌인 국내진공이 24회에 이를 정도로 무장투쟁이 활발하였다. 이렇게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독립군과 일본군과의 교전이 치열한 가운데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각 기관과 통신을 하며 조그만 배를 이용하여 압록강을 오르내리며 독립군의 통행을 도왔다. 그러나 이 사실이 적에게 발각되어 피신하였다. 1921년 여름부터는 대한광복군참리부원(大韓光復軍參理部員)이 되어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0년 7월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대한청년단연합회와 대한독립단 그리고 국내에서 활동하던 의용단을 통합하여 대한광복군사령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대한광복군의 활동을 인적·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군무부 직할 하에 조직된 군수기관이 대한광복군참리부였다. 대한광복군참리부원이 되어 광복군의 군수품 징발과 조달, 광복군의 징모 그리고 광복군의 주의선전 및 적정정탐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22년부터는 연통제 사무를 맡았다. 그해 7월 중순 동지 김덕명(金德明), 김창하(金昌河)와 함께 의주군 고녕삭면(古寧朔面)에 출장을 갔다가 23일 오후 12시 고녕삭면 삼벽정(三碧亭) 등지를 지날 때 적의 비상선에 걸려 포위되었다. 적의 사격을 받자 이에 응전하여 약 반시간 정도 분전하였으나 불행히 적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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