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출
金奇出1899. 12. 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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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99년 12월 7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마로면(馬老面) 관기리(官基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라 기출(基出) 또는 기출(其出)로 표기되기도 하였으며, 1940년 5월 25일 청일(淸一)로 개명하였다. 어려서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일찍부터 가출하여 떠돌다가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龍門面) 신장리(新庄里)에 있는 용문사(龍門寺)의 승려가 되었다. 1920년 (음)7월 13일경 박명호(朴明浩)·곽영준(郭英俊)·정호극(鄭鎬克)·윤만성(尹萬成)·최일만(崔壹萬)·양재은(梁在殷) 등과 함께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廣灘里)에 있는 천도교구실에서 회합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해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로 협의하였다. 모집한 군자금을 맡아 보관하는 군자금모집단 단주(團主)는 양재은이 맡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군자금 모집원이 되어 주로 양주(楊洲) 출신의 최일만과 함께 양평군,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박명호로부터 ‘대한신정부(大韓新政府)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의 인장(印章)이 날인된 「대한신정부 군자금 모집원 사령서(辭令書)」 및 「금전영수서(金錢領收書)」 등을 받아 이를 활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음)8월 23일 밤에 최일만·박백돌(朴白乭)과 함께 용문면 다문리(多文里) 김영각(金永珏)의 집에 들어가 현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그 이전에 이미 몇 차례 최일만 등이 김영각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100원을 변통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음)9월 2일 밤에는 강원도 홍천군 동면(東面) 노천리(魯川里) 정인영(鄭寅泳)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요청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날 밤 홍천군 천면리 이현세(李顯世)의 집에 숙박하며 다음날 아침 10일 내로 군자금 1,000원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남겨두고 그 집에서 나왔다. 이 일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예심을 마친 후 1921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강도죄 명목으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그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그해 8월 13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24년 「칙령(勅令) 제10호」에 의거하여 징역 5년 3개월로 감형되었다. 1927년 「칙령 제77호 제1조」에 의거하여 복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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