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칠
張台七189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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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1) 함경북도 무산군(茂山郡) 풍계면(豊溪面) 용천동(龍川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합화사(合化社) 상광포(上廣浦) 송금정(松琴亭)에 거주하면서, 의군단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의군단(義軍團)은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로도 알려져 있으며,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그해 4월 만주 지린성 옌지현(延吉縣) 명월구(明月溝)에서 대한제국 말기에 활동하던 의병장과 부대원으로 구성된 독립군 단체였다.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공화주의를 표방한 대한의군부의 조직은 본부와 중부(中部)로 나뉘었는데, 본부의 주요 간부로는 총재 이범윤(李範允),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을 두었고, 중부는 참모장 고평(高平),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가 임명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지린성 옌지현·허룽현(和龍縣)·왕칭현(汪淸縣)·훈춘현(琿春縣)에 걸쳐 활동하였고, 지방에 상설기구를 두었다. 또한 전위대를 두어 군자금 모집에 집중하였으며,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도 동맹을 체결하여 군사 활동을 개진하였다. 1920년 (음)2월 18일 의군단에 참여하여, 의군단 모연대장 이범모(李範模)의 부하가 되어 (음)3월 단원 30명과 함께 간도와 무산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3월 25일 허룽현 합화사의 다방에서 의군단원 27명을 모병하였다. (음)5월 지린성 허룽현 청산리(靑山里)의 주민에게서 신발과 식료품을 징발하고, 의군단원 장백삼(張白三), 이구현(李九鉉)과 더불어 4월 19일 오후 1시 허룽현 명신사(明臣社) 충신방(忠信坊) 장첨동(塲砧洞)의 삼림에서 일제 관헌의 밀정 김칠성(金七成)을 처단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6월 20일, 나이 32세 때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후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1년 7월 26일 항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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