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胄承
胄承1868. 2. 21 ~ 1945. 5.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8년 2월 21일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한수면(寒水面) 북노리(北老里)에서 이원재(李元宰)와 김언근(金彦根)의 딸인 안동 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초명은 이시승(李始承), 자는 대재(大哉), 호는 휘암(徽菴)·은구와(隱求窩)이다. 조선 중기 정승을 역임하고 4대 문장가로 알려진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1896년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서 종사로 활동했던 이조승(李肇承)이 동생이다. 1896년에는 유인석 의병부대를 도왔고, 1905년에는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의 좌종사로 활동하였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문하의 대학자인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가 자택을 방문하자 제자의 예를 갖추었고, 이후 선공감(繕工監) 감역관(監役官)을 지냈다. 1896년 2월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제천의병이 충주성을 공격할 때, 의병부대를 도왔다. 이때 승지로 명망이 높았던 동생 이조승은 500여 명의 민병을 모아 관군과 일본군에 비해 약했던 유인석 의병부대의 전력을 보충하였지만, 장자로 집안을 돌보며 할머니까지 모셔야 했기 때문에 인맥이나 재력을 동원하여 의병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제천의병이 충주성을 공격할 때 이조승의 부탁을 받고 충주(忠州)의 실정을 탐지한 후 부대에 전달해주었다. 또 충주향교 도유사 이벽원(李壁遠)과 지방대 두령이자 집안 마름이었던 김성한(金成漢) 등에게 의병부대에 내응해 지원하도록 하였다. 또한 후군장인 신지수(申芝秀)가 청풍 출신 권호선(權灝善)·족숙(族叔) 이면재(李冕宰) 등과 함께 별동부대를 이끌고 청풍 쪽으로 우회할 때도 이들을 지원하였다. 충추성을 점령한 뒤 점차 연합의병부대의 형태를 갖추어 나가던 제천의병이 관군과 일본군의 맹렬한 공격에 직면하자, 후군장 신지수가 관군과 일본군을 분리시키려는 작전을 세웠다. 이때 서울로 올라가 의병에 호의적이며 친분이 있던 유기환(兪箕煥)·민영기(閔泳綺)·조동희(趙同熙)·이도재(李道宰) 등을 만나 의병은 ‘비도(匪徒)’가 아니므로 관군이 더 이상 의병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고종에게 상달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집중 공격을 받던 제천의병은 1896년 3월 근거지로 삼았던 충주성을 일본군에게 내어주고 청풍과 단양 등지로 패주하였다. 이인영(李麟榮)과 이강년이 의병을 모아 합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공격과 내부 분열로 인해 유인석은 결국 의병부대를 이끌고 중국 랴오둥(遼東)으로 가는 서행을 결정하였다. 그러자 충주군 살미면(乷味面) 고운리의 전장(田庄) 10,000평을 팔아 유인석의 재기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제천의병에게 처단당한 단양군수 권숙(權潚)의 아들인 권보상(權輔相)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유인석을 살해하려고 할 때, 이를 미리 탐지해 저지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자행된 일제의 광무황제(고종)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분개하여 이강년이 다시금 의병을 일으키자 의병부대에 들어가 좌종사(坐從事)로 활동하였다. 좌종사로서 거주지를 기반으로 지역 사정과 일본군의 동태 등을 살펴 의병부대에 전달하면서 연락을 담당하였고, 식량·숙소·군수물자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수안보(水安堡) 석문리 근처에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팔아 의병부대를 지원하였고, 수안보 부근 상모면(上芼面) 석문동(石門洞)에 있는 임야를 제공해 부대가 주둔하며 조련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부근의 암수바위굴을 군사 작전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 충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문경으로 향하던 이강년 의병부대가 태장동(台長洞)을 거쳐 제천을 지나가자, 불당곡(佛堂谷)에 위치한 자택을 제공하여 의병들을 쉬게 하였다. 이때 이강년은 『국수원류(國讎源流)』 1편, 『군계(軍戒)』 12귀, 「통고문(通告文)」 1장을 지어 의병들을 분발하게 하고, 군율을 정비하였다. 1908년 6월 4일 이강년이 청풍 까치성(鵲城)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붙잡힌 이후에는 고향에 은거하면서 의병 관련 기록을 모으거나 직접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회갑을 기념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베푼 연회에서 받은 시문을 모아 11권의 책으로 엮은 『은구와총록(隱求窩叢錄)』과 교유관계를 알 수 있는 『수연경첩(壽宴瓊帖)』·『종유록(從遊錄)』 등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휘암집(徽菴集)』으로 간행되었다. 특히 만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종유록』에는 지인 349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