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록
金甲錄1899. 4. 24 ~ 1977. 9.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회화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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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9년 4월 24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회화면(會華面) 배둔리(背屯里)에서 태어났다. 고성군의 만세 시위는 서울의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구만면(九萬面)의 청년 유지들이 계획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요약해서 작성한 후 필사하여 주변 12개 동리에 비밀리에 전달하고 거사 일을 3월 20일로 정하였다. 나팔 소리를 신호로 구만면을 관통하는 국천(菊川) 모래사장에 모이기로 하였는데, 회화면(會華面)에도 사람을 보내어 의거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3월 29일 배둔 장터에 집결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한다는 연락을 받고 거사 당일 서찬실(徐贊實)·김동기(金東琪) 등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배둔 장터로 나갔다. 3월 30일 오후 1시경 구만면의 중앙부에서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개천리(介川里)·마암리(馬岩里) 주민 등 500여 명이 국천 모래사장으로 모여들었다.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회화면 배둔 장터로 시위 행진하였다. 배둔 장날을 기해 만세 의거를 일으킨다는 정보를 입수한 헌병대는 완전무장으로 길을 차단하고 있었으나, 구만면의 시위대는 나팔을 불어대며 제지선을 뚫고 배둔 장터에 도착하였다. 배둔 장터에 집결해 있던 회화면 주민들을 이끌고 구만면에서 도착한 군중과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를 행진하였다. 700~800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배둔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한 후 구만면으로 귀환하였다. 이 시위로 인해 체포되고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24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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